"전주한지" 시야를 넓혀야 한다

이철량(전북대교수)

예전에 우리의 밭고랑이나 야산에 흔하게 널려 있었던 닥나무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70년대 부터였다. 농업의 변화에서 비롯되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닥나무의 일본 수출이었다. 일본은 일찍이 한국 닥을 가져다 고급 화지를 생산해 유럽 등에 팔았다. 우리는 닥피만 팔았어도 되었는데, 나무를 통째로 베어 넘겨주었다. 일본은 80년대를 지나며 한국에 닥이 고갈되자 한국과 풍토가 똑같다는 중국 산동에 닥을 심어 생산해 갔다. 그런데 이 닥 생산이 넘쳐 일본인들만이 쓰던 양질의 닥이 중국시장에 흘러나오고 있다 한다. 그런가하면 중국이 수천 년 동안 골머리를 앓던 황하의 범람을 닥나무가 해결해 주고 있다 한다. 넓게는 수백 미터에서 수십 미터나 되는 황하제방에 닥나무를 심어 수해를 막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닥이 황하강변에서 쏟아져 나올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 많은 닥을 우리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한지는 꼭 한국 닥이어야만 하는가? 문화적 측면에서만 보면 타당성이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문화산업에서 보면 지극히 폐쇄적 사고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동안 수없이 닥 산지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창해 왔고, 그리고 정부 지원으로 많은 노력을 했다고 보여 지지만 아직껏 닥은 자라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한지는 문화에서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많은 식자들은 한지산업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닥종이 원료가 꼭 한국의 것이어야만 하는가 생각할 일이다. 앞으로는 중국에서 쏟아져 나올 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왜 그동안 많은 재원을 투자하면서도 그렇게 흔하게 자라던 닥나무를 기르지 못하는지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지는 왜 닥종이여야만 하는가? 닥종이는 말할 것도 없이 닥나무에서 생산된다. 그러면 한지는 무엇으로 만들어 지는가. 닥종이를 한지라고 부른 것은 단순히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 지난 80년대 비로소 우리문화를 되돌아보면서 전통 종이를 한지라고 부른 것일 뿐이다. 이 말은 한지에는 닥종이를 포함해 다양한 종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중국에서처럼 볏집, 갈대, 대나무 등을 활용해 종이를 만들어내지 않는가. 지금처럼 한지를 닥종이로 의식을 고착화하면 한국 종이는 생산기반이 완전히 살아질지도 모르는 형국이다. 이제 우리도 다양한 종이 원료 발굴에 노력해야 한다. 전주는 그래도 다양한 원료의 수제 종이 생산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곳이다. 전주는 닥종이만이 아니라 다양하고 독특한 한국 수제종이의 중심지로 남아야 한다.

한지는 문화 콘텐츠이다. 마치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가 많은 돈을 벌어주는 것과 같은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다양한 한지제품을 개발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한지는 종이 자체로서도 하나의 상품이지만, 그것을 통해 많은 부가가치를 노릴 수 있는 문화콘텐츠이다. 지금처럼 한지공예나 한지의상으로 인식되는 한지 상품은 대단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닥의 원산지를 따지는 것은 더더욱 의미가 적다. 세계적으로 종이를 문화상품으로 개발하여 성공한 것은 일본이다. 잘 알고 있듯이 일본은 이 쑤시게 하나도 수제종이로 감싸서 식탁위에 올린다. 이처럼 생활 구석구석에서 일상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자신은 물론이려니와 선진 외국에 팔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생활용품으로서 한지를 인식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한지가 전통의 굴레에 머물러 있는 한 한지시장의 확대는 어려워 보인다.

그동안 전주는 한지산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닥나무도 재대로 기르지 못했고, 종이 개발도 하지 못했다. 이제 닥종이의 신화에서 깨어나길 바란다. 아무래도 일본의 화지산업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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