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5일 오전 10시께 전주 남부시장. /이상선 기자

"우리는 뭐먹고 살라고..."

28일 오전 10시 전주 완산구의 한 전통시장. 이곳에서 40년째 정육점을 운영하는 A(63)씨는 한숨을 쉬며 이같이 말했다.

남부시장은 전북의 대표 전통시장이다. 옛 전주 부성 밖에 형성되었던 장에서부터 유래된 남부시장은 한때 '남부시장에 들리지 않고는 결혼을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민들의 일상에 깊이 관여된 시장이지만, 이 시간 시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찾기 어려웠다.

A씨는 “전통시장은 이미 대형마트에 잠식된 상황"이라며 "그나마 강제됐던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폐지된다면 정부 차원에서 (우리 상인들에게) 이제 장사를 접으라는 소리로 들린다"고 하소연했다.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B(68)씨는 “그래도 대형마트가 일요일이라도 영업하지 말아야 상생할 수 있지 않나”며 “우리는 가격도 더 싸서 많이 팔아야 겨우 남기는데 손님이 더 없어진다면 너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에 대해 대형마트는 이에 호응하는 반면 소상공인과 마트 노동자들의 반발은 커지면서 진행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정부가 대형마트 영업 규제 중 하나인 의무휴업일 폐지를 검토하면서 이 같은 논란이 시작됐다.

앞서 대통령실은 국민제안에 접수된 민원·제안·청원 1만 2000여건 가운데 정책화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10개를 선정, 오는 31일까지 10일간 온라인 국민투표를 진행해 상위 3건을 국정에 반영한다고 밝혔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영업시간 제한·의무휴업 범위에서 온라인 배송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대통령실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까지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에 부치면서 대형마트 영업 규제 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은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이 제정됨에 따라 생겨났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은 매월 이틀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로 지정해야 하고 영업시간도 오전 0시부터 10시 사이 범위에서 제한할 수 있다.

전북의 경우 매월 둘째·넷째 주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정하고 있다. 이는 골목상권과 마트 노동자들의 휴식권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법안이다.

반면 최근 온라인 유통 시장이 활성화됨에 따라 대형마트 규제가 이전보다 의미가 없어졌다는 의견도 많았다. 다만 많은 소상공인은 의무휴업일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부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D(58)씨는 “대형마트 상품들과 같은 품목을 파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의무휴업일마저 없으면 장사가 더 어려워진다”며 “접근성으로 보나 편리성으로 보나 대형마트를 찾지 않겠나”고 말했다.

한국 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도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은 2018년 대형마트 7곳이 낸 헌법소원에서 합헌 결정된 바 있다”며 “적법성이 인정됐음에도 새정부는 국민투표를 통해 골목상권의 보호막을 제거하고 대기업의 숙원을 현실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지난 26일 오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인천본부 조합원들 인천시 연수구 이마트 연수점 앞에서 정부의 대형마트 영업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인천본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조는 정부의 대형마트 영업규제 완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8일 자영업자들이 많이 모이는 포털 누리집 커뮤니티에는 자영업자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중대 사안을 ‘온라인 투표’를 통해 정할 일이냐”며 대통령실이 나서 국민을 편가르기 한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논란이 이는 국민제안 정책에 문제는 이런 중대사안을 ‘엉터리 국민제안 투표’ 형식으로 의견 수렴을 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제안 내용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도 없고, 토론의 장에서 논쟁과 설득의 과정도 없어 사회적 갈등만 부추기는 꼴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상인회 관계자 E(65)씨는 “마트 의무휴업 등은 협의와 논의를 통해 제도화된 사안 임에도 이런 식으로 인기 영합적 투표를 통해 제도개선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합의·논의 구조를 부정하는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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