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소속 국립국제교육원 기획조정부 한국어능력시험센터 홈페이지. 현재는 접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교육부 소속 국립국제교육원 기획조정부 한국어능력시험센터 홈페이지. 현재는 접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암표상들 때문에 졸업을 못 하게 생겼습니다.”

외국인 유학생의 국내대학 졸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한국어능력시험(토픽·TOPIK)’이 암표상들로 인해 얼룩지고 있다.

암표상들이 토픽 시험장을 다량 예약해두고 학생들에게 2배 이상의 웃돈을 받아 팔고 있는 것. 이로 인해 전북지역을 포함한 전국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졸업을 제때 못하는 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19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토픽은 교육부 소속 국립국제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재외동포·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사용 능력을 측정·평가하는 시험이다. 쉽게 말해 ‘공인어학시험’이다.

토픽 시험 신청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근처 지역 대학교를 시험장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이처럼 시험장을 예약 후 결제를 확정하게 되면 선택한 해당 대학교 시험장으로 가서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구조다.

전국적으로 시험장은 64곳이며, TOPIK 1(1~2급), TOPIK 2(3~6급)로 등급이 나뉘는 시험이다. 여기서 TOPIK 2는 국내 대학교 입학과  졸업, 외국인들의 국내 취업에 사용된다. 실제로 도내 전북대학교의 경우 입학 시 TOPIK 3급 이상, 졸업 시 TOPIK 4급 이상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현재 중국인들 사이에서 이른바 ‘황니우(黄牛)’라고 불리는 암표상들이 전국적으로 선정된 시험장들을 거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이들 암표상은 얻어낸 수백여 개의 시험장 자리를 2~4배의 웃돈을 얹혀 판매하고 있다.

특히 유학생들이 국내대학 졸업 시 시험성적을 제출해야 하는 기간은 6월 말까지로, 이번 제94회 토픽이 마지막 기회인 것으로 파악됐다. 3월에 시험장 예약 후 5월에 응시, 결과가 6월 말에 나오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는 비단 전북지역의 대학뿐 아니라 서울대, 경희대, 성균관대, 동국대, 단국대 등 수도권 지역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피해는 대부분 중국 유학생들이 받고 있지만, 외국인 모두가 토픽 시험 성적이 필요한 만큼 다른 국가 유학생들도 피해가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졸업을 앞둔 중국인 유학생 왕모씨는 “시험장 예약은 오전 10시부터라 오전 9시부터 9시 59분까지 초 수를 보면서 예약 대기했음에도 홈페이지의 오류와 함께 10초 만에 자리가 다 사라졌다”면서 “졸업을 위해 6월까지 성적을 내야 해서 이번 3월 신청이 간절한데, 암표상들 때문에 졸업을 못 하게 생겼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전북대학교 중국인 유학생 장모씨는 “본래 가격이 5만 5,000원인데, 암표상들은 20만 원 가까이 판다. 한국 대학을 졸업하려면, 울며 겨자먹기로 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라며 “사게 되더라도 암표상들이 전북지역의 시험장 자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다른지역으로 옮겨가 시험을 봐야한다”고 했다.

현재 유명 중국 SNS인 샤오홍슈(小红书)에는 94회 토픽 시험을 보지 못해 졸업을 연기하거나 못 하게 될 처지에 놓인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반면 토픽 시험자리를 판다는 암표상의 게시물도 빗발쳤다.

중국 유명 SNS 샤오홍슈. 제94회 한국어능력시험 신청을 못했다는 사례가 빗발치고 있다.
중국 유명 SNS 샤오홍슈. 제94회 한국어능력시험 신청을 못했다는 사례가 빗발치고 있다.

중국 SNS를 통해 연결된 토픽 시험 암표상과 기자의 대화는 현 상황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줬다. 

구매 방식 등 매뉴얼을 설명하는 중국 암표상./박민섭 기자
구매 방식 등 매뉴얼을 설명하는 중국 암표상./박민섭 기자

암표상에게 “시험장 자리를 구한다”라며 메시지를 보내자 1분도 채 되지 않아 답변이 왔다. 곧바로 구매에 대한 설명 매뉴얼을 보내기도 했다. 

다시 암표상에게 “전북대학교 시험 자리를 구하고 있다. 나를 포함해 12명의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그는 “문제없다. 한 사람당 550위안(한화 10만 1천원)을 보내주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시험장 자리를 매크로를 사용해 얻어내고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암표상은 “알려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특히 이들은 국내에서 계좌이체 등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주로 중국 채팅 메신저인 위챗(wechat)을 활용해 중국 돈을 받아 시험장 자리를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자가 전북대학교 시험장 자리 12곳을 요구해봤다. 이에 암표상은 '가능하다'라고 답했다./박민섭 기자
기자가 전북대학교 시험장 자리 12곳을 요구해봤다. 이에 암표상은 '가능하다'라고 답했다./박민섭 기자
시험장 자리를 어떻게 선점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는 암표상./박민섭 기자
시험장 자리를 어떻게 선점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는 암표상./박민섭 기자

이처럼 외국인 유학생들의 국내 대학 졸업이 불발될 수 있는 중한 문제인 한편, 이 같은 암표상의 만연으로 시험의 공신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동국대에 재학 중인 유학생 진모씨는 “응시자들의 언어 능력이 실력으로 입증되지 않고, 암표를 얼마나 잘 구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면서 “이제는 토픽 시험 관계자가 암표상의 시험자리 재판매를 방조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토픽 시험을 관리하는 기관에서도 암표상에 대해 알고 있지만, 여전히 별다른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립국제교육원 관계자는 “암표상의 존재는 알고 있다. 이번 94회 시험부터 발생해 파악 중이다”라면서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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