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는 경주․부여․공주와 함께 우리나라에 4개 밖에 없는 ‘고도(古都)’다. 미륵사지석탑과 왕궁리유적 등 마한․백제시대의 유적이 즐비하며, 청동기시대 유적지도 곳곳에 산재돼 있다.
하지만 고대 유적이 많다고 해서 익산시를 고대도시로만 볼 수는 없다. 익산시의 전신인 옛 이리시는 철도가 들어오면서 비로소 도시로 발달한 곳이고, 이와 관련된 근대문화유산도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풍부한 문화적 자산은 익산시를 세계역사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고, 현재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익산시를 ‘역사문화도시’로만 표현한다면 한 가지 면에서 서운함이 남는다. 바로 4대 종교의 성지가 자리하고 있는 ‘종교도시’라는 이미지가 빠졌기 때문이다.
실제 익산에는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등 4대 종단의 성지가 자리해 있다. 미륵사지와 숭림사 등의 불교 유산은 물론, 남녀 좌석을 구분하기 위한 ‘ㄱ’자형 교회, 나바위성당과 숲정이성지 등의 가톨릭교회 유산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 4대 종단으로 발돋움한 원불교의 중앙총부가 자리잡고 있어 명실공히 국내 4대 종단을 아우르는 ‘종교도시’라는 명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이다.

■ 천년고찰 숭림사
주로 평야지대로 형성된 익산의 서북쪽 해발 214m의 함라산 자락에 천년고찰 숭림사가 자리하고 있다.
작은 절이지만 '숭림사'라는 절의 이름은 중국 소림사가 위치해 있는 숭산(崇山)의 숭(崇)과 소림사(少林寺)의 림(林)자를 따왔다고 전한다.
보물 제825호로 지정된 보광전의 닫집을 비롯해 청동은입인동문향로 등 3점의 지방문화재가 전해지고 있다. 절 입구에서부터 좁은 도로의 양측에 심어진 벚나무는 봄 한철 장관을 이루며, 오붓하고 한가로워 옛부터 인근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 사랑을 받아온 곳이기도 하다.
숭림사는 최근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면서 다시한번 각광을 받고 있다.
숭림사 템플스테이는 전통문화를 배우고 체험 과정을 통해 나를 깨우치는 시간이다. 참선과 108배로 스스로를 가다듬고 다도와 명상을 통해 마음을 보듬는다. 자연에 몸을 맡긴 후 호젓한 휴식을 취하며 진정한 휴식의 가치를 느껴보는 시간도 갖게 된다. 또 발우공양으로 음식을 먹는 법과 그 의미에 대해 되돌아본다. 이른 아침 빗자루를 들고 숭림사 입구를 쓸다보면 마음까지 차분해진다. 사찰에서의 쉼표여행은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 ‘ㄱ’자형 두동교회
익산시 성당면 두동마을은 600년 역사를 가진 집성촌으로, 산과 들과 금강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두동마을의 한 교회 앞에는 정갈한 모습의 옛 교회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이 교회는 우리나라에 2개 밖에 남아있지 않는 ‘ㄱ’자형 교회 중의 하나인 두동교회이다. 두동교회는 1929년에 건립된 교회로, 건물을 ‘ㄱ’자형으로 설계해 강단의 한쪽은 남자석, 다른 한쪽은 여자석으로 서로 바라볼 수 없게 했다. ‘남녀칠세부동석’으로 상징되는 남녀유별의 전통 속에서 남녀 모두에게 신앙을 전파하려고 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발현된 건물인 것.
ㄱ자형 교회 안에는 몇 가지 비밀이 더 숨겨져 있다. 갈탄을 보관했던 장소와 오래된 의자, 풍금이 정겨움을 더해준다. 또 잠자는 영혼을 깨워주는 종탑의 모습도 이채롭다.
1960년대에 새로 교회 건물을 짓고 헐어버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당시 어르신들이 10~20년 후면 의미 있는 건물이 될 것이라며 헐지 못하도록 했다고 전한다. 2002년 4월 두동교회는 ㄱ자형 교회로 역사적 전통성을 인정받아 전라북도 지방문화재자료 제179호로 지정됐으며, 한국기독교사적지 제4호로 지정받았다.

■ 남녘 최초의 성당 ‘나바위성당’
나바위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첫발을 내디딘 것을 기념해 건립된 성당이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으로 명명한 ‘화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어 화산천주교회로도 불린다.
나바위성당의 겉모습은 마치 유럽의 성당 건축을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서까래가 드러난 복도는 영락없는 한옥이며, 양 옆으로 난 창문은 중국식의 팔각형이다. 프랑스 신부가 설계하고 중국 사람들이 건축에 참여하면서 고딕양식과 한식, 중국식 건축양식이 혼재된 모습이다. 하지만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내부에 들어서면 반질반질한 나무 바닥이 눈길을 끌며, 한국의 유교문화를 반영해 남녀의 자리가 구별된 흔적을 엿볼 수도 있다. 기다란 창문에는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한지가 발라져 있다.
성당을 나와 십자가의 길을 걸어 망금정에 오르면 인근의 농촌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 무진박해 때 순교지 여산숲정이성지
여산숲정이성지는 1868년 무진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 신자들이 묻힌 곳이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절정에 달하던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났을 당시, 금산(금산, 진산)과 완주(고산) 지역에 숨어 있던 신자들이 여산 관아로 끌려와 25명 이상이 처형당했다. 당시 순교한 신자들 중에는 일가족 6명이 모두 처형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순교자들은 숲정이와 장터에서 참수형 혹은 교수형으로 처형되었고, 동헌(지금의 경노당) 뜰에서는 얼굴에 물을 뿌리고 백지를 겹겹이 덮어 질식시켜 죽이는 백지사(白紙死) 형이 집행됐다. 옛 여산동헌 뜰에는 당시의 박해 사실을 증명하듯 대원군의 척화비가 서 있다.
목숨과 바꾼 신앙의 선조가 있어 오늘날 천주교가 굳건히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곳은 천주교 전주교구의 제2의 성지로 천주교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 원불교의 최고 성지 중앙총부
익산시 신룡동에는 원불교의 성지이자 중심인 원불교 중앙총부가 자리하고 있다. 1924년 9월 원불교 총본부로 원불교익산총부를 건설하면서 지어진 본원실을 비롯해 1927년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의 처소로 지어진 금강원 등 8개 건물과 2개의 탑이 초창기 모습 그대로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원불교인들의 성지이자 시민들에게 휴식과 여유를 주는 아름다운 정원이지만 바닥에 휴지 한장 떨어져 있지 않은 정갈한 모습이다.
총부 내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주요 일과 중의 하나가 청소와 화단가꾸기라니 그럴 법도 하다. 종교에 귀의해 마음을 닦듯 청소를 하고 꽃과 나무를 돌보는 것은 어쩌면 수행의 또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원불교 총부는 원불교가 낯선 이들도 들러볼만 하다. 원불교의 초창기인 1920~1940년대 일제 강점기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기 때문. 예전에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양식의 건물들이지만 대부분 현대식 건물로 바뀐 지금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소문관기자․mk7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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