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은 물가 하락 현상을 뜻한다. 얼핏 소비자 입장에서 좋은 현상 같지만 문제는 그리 단순치 않다. 총수요 감소로 야기된 디플레이션은 우선 경기침체를 동반한다. 경제 전체적으로는 상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그 여파로 물가는 하락한다. 기업은 이윤 감소를 감내해야 한다. 또 돈 가치가 상승하면서 기업의 부채부담은 커지고 결국 기업의 도산이 늘어나는 현상이 빚어진다. 그 결과 실업이 증가하고 경기침체는 더 심화된다.

나쁜 디플레이션으로는 1990년대 이후 일본이 대표적 예다. 이른바 버블경제가 꺼지면서 닥친 디플레이션은 물가 하락, 기업 실적 악화, 임금 상승 정체, 개인 소비 부진 등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정부와 일본은행이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20년 넘게 애를 쓰고 있지만 좀처럼 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2022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물가가 오르면서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침체에서 차츰 회복 국면으로 접어드는 흐름이다.

더 나쁜 치명적인 디플레이션은 널리 알려진 1929년부터 1930년대까지의 미국 대공황이다. 기업과 은행이 줄이어 도산하고 실업자는 넘쳐났다. 주가는 80% 이상 폭락하고 1만여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다. 당시 미국인 가운데 25%가 실업자였다.

어쨌든 현대에서 디플레이션은 좋은 면보다는 나쁜 면이 도드라진다. 좋은 디플레이션이란 기술 진보 등 요인으로 총공급이 늘어나 발생하는 물가 하락이다. 생산성 향상으로 더 낮은 비용으로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는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디플레이션은 최근엔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 경제에 다시 디플레이션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장기불황에 접어든 중국 경제 탓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부동산 침체로 국내 소비가 위축된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중국이 1990년대 이후 30년간 장기불황으로 고통을 받은 일본과 같은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수출 증대에 총력을 기울이는 형국이다. 중국이 만약 자국의 디플레이션을 해소하기 위해 싼 가격에 수출을 크게 늘리면 세계 경제는 과잉생산으로 디플레이션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중국은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31%, 전체 상품 수출의 14%를 차지하는 경제 대국이다.

중국 경제의 세계 경제에 대한 영향력은 아주 크다. 만약 중국 경제가 심각한 디플레이션 리스크에 빠진다면 전 세계가 쇼크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저가 밀어내기 수출은 곧 지구촌 경제를 디플레이션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 특히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대중 수출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 저가를 앞세운 중국 제품에 우리나라 경쟁력이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에 대비한 시나리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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