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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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이 올해로 105주년을 맞은 가운데 당시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밝혀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8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이날까지 밝혀진 전북지역 여성독립운동가는 25명이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전주 13명, 정읍·익산·옥구 3명, 김제 2명, 임실·부안·무주·금산 1명, 고창·군산·남원·순창·완주·장수·진안은 0명이다.

이들의 주요 활동 내역을 보면 3·1운동에 참여해 공로를 받은 이가 9명으로 학생운동(9명)과 더불어 가장 많다.

뒤이어 국내에서 항일운동에 뛰어든 여성독립운동가 6명, 미주방면 여성독립운동가 1명으로 나타났다.

현재 독립운동가 포상 훈격은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필두로 2등급 대통령장, 3등급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건국포장, 대통령 표창 순이며, 애족장을 받은 박두옥 열사를 제외하고 24명 모두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중 도내에서 3·1운동의 숨은 주역으로 김공순 열사가 꼽힌다.

김 열사는 지난 1901년 전북 정읍시에서 태어나 전주 기전여자중학교를 재학 중인 1919년 3월 13일 전주 남부시장에서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항일 시위운동을 전개했다.

그가 전한 독립선언서가 일경에 사전 탐지되는 역경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만세운동 계획은 계속 추진됐으며, 이때 당시 사회 인사, 기전여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그는 이 일로 일경에게 붙잡혀 1919년 6월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집행유예 3년을 받아 공소했으나 9월, 기각 및 형이 확정되기까지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후 1988년에 사망했다.

정부는 이 같은 그의 공훈을 기려 1995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이처럼 김 열사의 국가에 대한 희생과 헌신이 있었지만, 도내 전체 독립운동가 1,134명 중에서 단 25명(2.2%)의 여성독립운동가만 발굴된 상황이다.

여성독립운동가 총 25명 중 지난 2019년 이후 19명이 급격히 발굴되는 등 조금씩 활발해졌지만, 올해는 또다시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유는 무장 항쟁에 뛰어든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은 주로 연락책이나 자금 조달 등 드러나지 않는 활동을 했으며, 당시 가부장적 시선 속에 가려져 여성의 역할 과소평가 탓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독립을 열망한 전북여성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노력이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며 "다양한 방법과 자료를 통해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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