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는 공물로 주인이 따로 없다라는 혁신적인 대동사상을 주창하며 조선에 파장을 일으켰던 정여립. 하지만 선조 22(1589) 역모를 도모했다는 혐의로 박해를 받는다. 일명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불리는 기축옥사로 3년간에 걸쳐 동인 천여 명이 희생됐다.

실체가 불분명한 모반사건임에도 이후 모역의 무대로 지목된 전라도 지역은 중앙정계에서 위세가 약화됐으며, 향촌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감내해야 했다.

이동희 예원예술대학교 교수·전 전주역사박물관장이 이 사건을 지역사적 관점에서 되짚는 책을 펴냈다.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의 학술연구지원 사업으로 출간한 조선시대 정여립 모반사건과 전라도’.

책은 정여립과 그 가문으로 시작해 상·하 합계 대동계, 옥사의 발발과 확산, 그리고 사건의 진상과 전라도에 끼친 영향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앞선 고려시대에도 나주·경주·개경 세력이 정국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가운데 난데없이 전라도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는 훈요십조가 세상에 나와 나주 세력이 퇴조하는 결과를 불러왔다고 말한다.

이동희 교수는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전라도 세력이 중앙에서 헤게모니를 다툴 때 진위가 분명하지 않은 정치적 사건이 발발하고 이로 인해 전라도 세력이 퇴조하는 일이 되풀이 됐다전라도 지역사 정립을 위해선 왜 이런 역사가 반복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머리말에서 책 출간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전라도의 역사를 저항과 차대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정여립 사건도 그런 차원에서 해석됐다이 같은 시각과 논리에서 벗어나 전라도의 변혁적 성향을 담은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정해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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