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를 맞아 사림의 숨결이 깃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중 한 곳인 정읍 무성사원에 가보자. 무성서원은 강학(講學)을 통해 후학을 양성하고 배향(配享)을 통해 선현을 모셨으며, 사림의 정치·문화 교류의 역할을 했다. 서원은 신라말 태산군수로 부임해 유화적 교화로 선정을 베푼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다른 서원과 달리 경치가 빼어난 곳에 자리를 잡지 않고, 마을의 중심부에 세운 것이 특이하다. 무성서원의 역할이 지역민과 함께하는 흥학과 교화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현가지성(絃歌之聲)에서 유래한 현가루(絃歌樓)

마을 중심부를 가로질러 홍살문을 지나 무성서원 입구에 도착하면 고풍스러운 현가루(絃歌樓) 누각이 문화유산 답사 손님을 맞이한다. 2층 누각의 현가루명칭에 무성서원 건립의 취지와 의미가 담겨 있다. ‘현가는 공자의 일화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노나라 무성(武城)의 현감이 됐는데 예악(禮樂)으로 백성을 잘 다스렸다. 공자가 이 고을을 찾아가니 마침 현가지성(絃歌之聲: 현악에 맞춰 부르는 노래)이 들려와 탄복했다고 한다.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서원이 예악을 일으켜 백성과 가깝게 있도록 해야 한다는 공자의 교화사상을 담고 있다.

해설사와 함께 한 무성서원

무성서원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고 있는 서원에 대해 알아보았다. 무성서원은 1615년에 서원으로 문을 열었는데 건립 과정이 독특하다. 신라말 문장가이자 정치가인 최치원은 12(869)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빈공과에 합격하고 관직까지 지내면서 이름을 날렸다. 골품제의 폐쇄성에 부딪혀 한계를 느끼고 외직 태산 태수로 부임(28)8년 동안 선정을 베풀고 떠나자, 백성들이 최치원의 선정 치적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生祠堂: 살아 있는 인물을 받들어 모시는 사당)을 짓고 태산사(泰山祠)’라 했다. 1696(숙종 22)에 유학자 최치원의 업적을 기린 무성서원(武城書院)’으로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됐다.

태극문양이 뚜렷한 내삼문

태극문양이 뚜렷한 내삼문은 제향공간의 정문으로 그 안쪽이 성역이므로 신과 사람이 만난다는 뜻의 내신문(內神門)’이라고도 한다. 태극은 우주생성의 과정을 상징한 직관적인 문양으로 신성과 신비의 부호로 사용해 왔으나 차츰 쓰이는 범위가 넓어져 길상(吉祥)과 축복의 뜻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제향의 공간으로 통하는 태극문으로 들어설 때는 예를 갖추기 위해 해설사를 따라 옆으로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태산사에 들어선다. 세칸 중 가운데 문은 혼이 다니는 문이라 하여 사람이 사용하지 않고 동입서출이라 해 제사를 올리는 사람들은 동쪽으로 들어가고 서쪽으로 나오며 예를 표하는 의미가 있는 내삼문이다.

무성서원 제례행사 춘향제(春享祭)’

지난 10일 무성서원에서는 춘향제가 열렸다. 춘향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남원의 춘향제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제례행사이다. 조선시대부터 종묘와 사직에 제사하는 춘향대제가 있었는데, 이는 왕실에서 치루는 큰 제사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춘향제(春享祭)는 봄을 맞아 선현들의 높은 공덕을 기리는 지방의 제사라 할 수 있다. 현가루에서 무성서원 강당을 지나 태산사까지 제사를 지내기 전에 잡귀를 쫓기 위해 뿌린 황토 흙에서 춘향제의 흔적을 알 수 있었는데 우리의 전통 제례를 지켜 나가려는 선현들과 유학자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담장밖 강수재&병오창의기념비

강당 오른쪽 강수재로 연결된 좁은문을 나서면 병오창의기적비를 마주하게 된다. 을사늑약 이후 항일 의병투쟁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때 병오창의(丙午倡義)1906년 유학자 면암 최익현과 제자인 임병찬 등과 함께 무성서원 강수재 앞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순창에서 관군과 맞서다가 붙잡혀 최익현과 임병찬 선생님은 대마도로 끌려갔고 최익현은 단식 끝에 순국을 한다. 병오년 태인의병은 10일 동안의 항일투쟁 운동으로 그쳤지만, 이후 호남지역 의병투쟁의 출발점이 된 최초의 항일 의병운동으로 의미가 크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92년에 비석을 세우고 항일 구국 의병들의 호국정신과 의로운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무성서원은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닌 현실 정치와 사회 교화에 적극적으로 앞장선 서원으로서 무성의 진정한 의미를 잘 살린 서원이다.

태산선비문화사료관

태산선비문화사료관은 태산선비문화권의 중심지인 칠보면을 중심으로 한 선비문화와 유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데 태산선비문화에 대한 설명을 비롯해 사진자료를 곁들인 선비문화·민속문화 설명판이 설치됐고, 탁본·그림·문서·유물 등이 전시돼 있으며 무성서원의 모형도 있다./김대연기자/자료제공=전북도청 전북의 재발견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