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왕정동 교룡산 남쪽 자락에는 고려시대의 절터인 만복사지(萬福寺址)’가 위치하고 있다. 만복사는 고려 문종 시기(1046~1083)에 만들어졌으며 당시 남원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사찰이었다. 하지만 선조 30, 정유재란(1597)때 왜군에 의해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불타버린 안타까운 역사도 가지고 있다. 넓은 부지에 여러 건물 흔적을 비롯해 5층석탑과 불상 좌대, 당간지주, 석불입상이 남아 화려했던 과거의 자취를 어렴풋이 되짚어 볼 수 있다. 만복사지는 시내권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과 교통편의도 좋아 도보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에게도 추천하며 한국사에 관심이 많거나, 아이들 역사 견학지로도 손색없는 관람코스가 될 것 같다.

노총각 양생이 부처님과 저포놀이(윷놀이)를 했던 이유

조선전기 탁월한 문장력으로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고 우리나라 최초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써낸 작가였던 김시습그가 써낸 한문 소설 만복사저포기의 실제 배경이었던 만복사지.

어릴 때 부모를 잃고 만복사에서 혼자 살아가던 양생이라는 사람이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것에 대해 한탄하다가, 부처님 상을 앞에두고 저포놀이를 해서 본인이 이기면 배필을 구해주라며 엄포를 놓은채 홀로 내기를 시작했고, 결국 양생이 이기게 된다.

홀로 시작한 내기라는 생각이 들 무렵, 부처님이 소원을 들어주었는지 아름다운 여인이 배필을 구하러 왔다며 홀연히 나타났고 이윽고 둘은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하지만 행복한 날도 잠시, 양생은 우연히 그 여인이 전쟁 중에 억울하게 살해당한 처녀라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이 아닌 귀신이었기에 양생만이 여인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여인은 다른 곳에서 남자로 환생하게 됐다며 사라져 버리고 양생은 그 여인을 그리워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산으로 들어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남원시 대표 관광지들의 특징은 이처럼 문화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만화로 풀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방문하시더라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자칫 딱딱해 보일 수 있는 옛 문화재임에도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여기도 보물, 저기도 보물

만복사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만복사지 석인상은 전체 높이 5.5m로 사각의 화강암 기둥에 조각돼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잔뜩 화를 머금은 눈과 치켜올린 눈썹, 정갈하게 말아올린 머리채와 단호하게 접어 구부린 팔로 간결하면서도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원래는 당간지주에서 도로 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훼손 및 사고의 우려가 커 안쪽으로 옮겨뒀다고 한다.

사찰의 가장 앞쪽에 자리하고 있는 당간지주는 약 3m의 화강암 돌기둥으로 고려시기 만복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보물 제32호로 지정돼 있을 만큼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절에서 행사를 치를 때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그림 깃발을 걸어놓은 용도로 쓰인 것으로 흙에 묻혀있는 받침까지 짐작하면 약 5m의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데 이렇게 규모가 큰 당간지주는 흔치 않아서 옛 만복사의 규모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만불사에는 35()의 금동 불상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의 단위로 해석하면 약 11미터를 자랑하는 대단한 크기이다. 이를 지지하기 위해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높이 1.4m의 돌에 전체를 조각한 만복사지 석조대좌이다.

불상을 올려두는 받침돌은 일반적으로 원형이나 사각으로 만드는 것과 달리 각 측면의 연꽃과 코끼리 눈을 조각해 놓은 육각형의 받침돌로 만들어져 있다. 그 규모와 역사성을 인정받아 보물 제31호로 지정돼 있다.

만복사지의 규모를 짐작케하는 다양한 석조 구조물

만복사지 가장 안쪽에서는 보물 제 30호인 만복사지 오층석탑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일부 훼손이 있지만 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오층석탑은 떨어져 나간 윗부분을 제외하면 높이 5.75m의 석탑으로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띄고 있지만 2층부터 몸체와 지붕사이에 넓은 돌 판을 하나하나 끼워넣어 변화를 준 것이 특징이다. 1968년 탑을 수리하던 중에 위의 몸체에서 사리 보관함이 발견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만복사의 유일한 건물(보호전각)이 있는 곳 만복사지 석조여래입상을 만나러 가보자. 앞선 석인상과 다르게 인자한 표정이 특징인 석조여래입상은 보물 제43호로 지정돼 있다. 천년의 미소를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로 들어가기까지의 특별한 불상양식으로 그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고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다. 아쉽게도 양 손은 사라지고 끼울 수 있는 홈만 남아있는 모습이다.

부처의 모습뿐만 아니라 광배(등 뒤의 후광을 표현한 부분)의 옷 주름 하나하나에서도 섬세함과 우아함이 자못 느껴진다. 또한 광배의 뒤쪽에는 부처의 앉은 모습이 조각돼 있으니 놓치지 말고 눈에 담아보길 바란다./김대연기자/자료제공= 전북도청 전북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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