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미 전라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

 얼마 전 유명 퀴즈쇼에 나온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가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조언한 내용이 인상 깊다. 최 교수는 ‘느림의 미학’이 중요한데 이는 글(作文)과 글씨를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붓을 들어 한 자 한 자 정성껏 쓰는 서예야말로 ‘느림의 미학’을 쌓을 수 있는 좋은 예라 할 것이다. 태권도, 판소리와 함께 서예도 매년 헝가리와 폴란드 등 여러 나라에 소개되고 있지만 느림의 미학을 담아낼 콘텐츠는 아직 미약하다.

 다행히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서예를 바라보는 세계의 관심이 활기를 띠고 있다. 서예의 필획과 붓 터치가 반영된 글씨(書)가 디자인과 접목되면서 영화와 광고, 각종 상품의 로고 등 전 산업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진안 출신 서예가 효봉 여태명 선생이 쓴 2018년 남북정상회담 공동기념식수 표지석(‘평화와 번영을 심다’)의 경우도 서예가 이 시대의 예술로써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하나의 예이다. BTS가 우리 대취타를 편곡해 부르고 뮤직비디오에 탈춤을 넣었고, 드라마 ‘파친코’에 판소리가 나오고 있는 지금 우리 서예 또한 세계 속에 설 수 있지 않을까.

 전라북도의 서예는 뿌리가 깊고 저력이 탄탄하다. 조선 후기 창암 이삼만 선생 시대에 서울에 필적할 만한 지방 서단을 형성하고, 이후 걸출한 서예가들을 많이 배출했다. 석전 황욱(1898~1993), 강암 송성용(1913~1999), 남정 최정균(1924~2001) 등 여러 대가들의 활동에 힘입어 전라북도는 서예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드날렸고, 이를 바탕으로 1997년부터 세계인의 서예 종합축제인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다. 한지 산업과 한지 명인 또한 전북에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한 산업 동력을 키울 때다.

 한복, 판소리 등 우리 전통문화가 ‘K-헤리티지(Heritage)’라는 이름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듯이, 서예도 문화예술 분야의 새로운 콘텐츠로 발전시킬 수 있다. 일본에서는 고등학교 서예부 학생들이 커다란 종이를 놓고 음악에 맞춰 춤추며 서예를 하는 퍼포먼스 대회가 화제가 되었고, 이를 ‘서도걸즈’라는 청춘영화로 만들어 상영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도 젊은 층을 위한 다양한 서예 콘텐츠 행사를 마련하여 서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서울과 수원에는 서예박물관이 있는 반면, 서예비엔날레가 개최되는 종주 도시 격인 우리 전북엔 아직 대표 기관이나 건물이 부재하다. 그래도 올해부터는 세계서예비엔날레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어 서예 콘텐츠 진흥의 심장박동이 빠르게 뛸 수 있을 것이다. 세계서예비엔날레관은 전라북도를 넘어 국내 모든 서예인들의 염원을 담은 공간으로 조성할 예정으로, 교육·산업·전시·체험 공간 등으로 조성하여 서예문화진흥의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중국과 일본 등에서 동아시아 문화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비엔날레관 준공을 기점으로 많은 잠재력을 지닌 전라북도가 그 중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북의 자긍심을 위하여 서예에 대한 도민과 애향인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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