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시위가 장기화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폭력과 혐오는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일부 시위를 반대하는 이들은 청소도구까지 동원해서 혜화역 승강장 벽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떼고 현수막을 절도하며, 전장연 사무실에 찾아와‘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한다. 한 장애인 활동가는 지나가는 사람에게“팔까지 장애인이 되고 싶나.”라는 폭언까지 들었다.

7월 26일 전장연은 SNS에 '다른 반응'이라는 제목의 만평을 올렸다. “요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사람들 반응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장애인도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그러나 드라마를 끄고 현실로 돌아와 출근길에서 장애인이‘지하철 타기 선전전'을 하면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의 마음들은 온데간데 없다.”며 “라이브 방송이건 현장이건 장애인에게 비난과 조롱, 욕설을 퍼붓고 때로는 폭력적인 위협을 가한다.”고 토로했다.

‘변호사 우영우’라면 지하철 시위를 어떻게 생각할까? 
“법의 발전은 권리 확장의 역사였으며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며 사람과 사람이 공존하도록 하는 역사입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거의 모든 권리들은 과거에 당연하지 않았던 것이고 그 당연함을 쟁취하기 위하여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혹시, 이런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

‘사람이라면 당연히 휴식할 권리가 있다.’,‘사람이라면 당연히 의식주를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명제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 어디에도‘모든 국민은 잘 쉬고, 잘 입고, 잘 먹고, 그리고 잘 자야 한다.’와 같은 조항은 없다. 

‘사람이라면 당연히’를 앞에 붙일 수 있는 내용이라면, 그것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라는 뜻이다. ?헌법 제10?조와 ?헌법 제37조?가 이를 뒷받침하며, 장애인이동권도‘사람이라면 당연히’를 앞에 붙일 수 있는 권리이다.

에밀리 데이비슨(Emily Davison)은 1913년 영국의 경마대회에서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던 말의 행렬에 몸은 던지며 여성에게 투표권을 달라 외치며 사망했다. 지금 여성 투표권의 당연함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불과 100여 년 전에는 여성들의 목숨을 건 투쟁과 절규가 있었다. 당시에 경마를 즐기는 누군가는 경기를 망친 불편함 때문에 데이비슨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데이비슨 사건을 돌이켜보면 데이비슨은 당연함을 쟁취하기 위하여 목숨을 건 것이다.

2002년 8월 29일에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담화문을 발표하여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말뿐이었다. 종로3가역(2003년 9월 23일), 서울역(2004년 9월 24일) 회기역(2006년 4월 30일/ 사망), 화서역(2008년 4월 18일), 오산역(2012년 4월 20일), 신길역(2017년 10월 20일/ 사망) 등지에서 크고 작은 지하철 역사 내 장애인용 휠체어리프트 사고는 계속해서 발생했다. 수 많은 희생을 겪고 장애인들은“나도 죽지 않고 이동하게 해주세요!”라는 당연함을 이제야 시위를 통해 주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22일 청와대 개방을 기념하는 음악회에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청와대 공간은 아주 잘 조성된 멋진 공원이고 문화재”라며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의 것”이라고 말했다. 실소가 나왔다. 그때 당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차별금지법 입법을 촉구하며 단식을 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삭발 투쟁을 하며, 바닥을 온몸으로 기며 ‘사람이라면 당연히’를 외치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국민통합정부를 천명했다. 이에 반해 기획재정부는 재정 부족의 사유로 올해 국토교통부가 요청한‘교통약자 이동권’예산 중 30%인 약 400억 원을 삭감했다. 무엇이 윤석열 정부의 진심이고, 진정 시민들에게 돌려줄 것이 청와대 부지뿐인가? 시민들이 돌려받아야 할 것은‘멋진 공원과 문화재 같은 청와대 부지’가 아니라, 문밖의 차별 없는 세상이 아닌가. 당연함을 당연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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