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형 순창군립도서관장

순창군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의 문화강좌실에는 매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아주 특별한 교실이 생겨난다. 가방을 들고 등교하듯 도서관 문을 들어서는 어르신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성인문해 교실 때문이다.

코로나는 당연했던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마스크와 출입명부 작성, 주문배달, 화상회의, 아이들은 온라인 등교를 한다. 사람들이 드나들며 책을 읽고, 문화행사 모임이 있어야 하는 도서관의 풍경도 비대면으로 대체되는 일이 많았다.

우리 도서관에서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작은 ‘한글교실’의 문을 다시 열었다.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방역지침을 지키면서 조심조심 열린 교실이다.

어르신들은 이 교실에 들어서기 위해 가방을 챙기고, 그 안에 공책 몇 권 필통, 책을 넣은 다음 고운 옷을 고르고, 때깔나는 모자도 쓴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의자에 앉는다. 코로나 때문에 꽤 오랫동안 교실문이 닫혀 답답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애써 배웠던 글자를 잊는 게 아닐까 걱정이 많았다.

더운 계절의 오후 2시 교실이지만 생기가 넘친다. 선생님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가방이 넘어지고, 가끔 필통이 떨어져도 괜찮다. “남원댁? 장수댁? 광주댁?”하며 이름도 없이 불리웠던 할머니도 이 교실에서는 그냥 할머니가 아닌 자기 이름으로 불린다. 80대지만 공부 욕심은 누구 못지않다. 그러나 지난주에 배운 것도 잊어버리기 다반사다. 그래도 괜찮다. 또 공부하면 되니까 하고 웃는다.

어르신들은 글자를 몰랐을 때는 팍팍하고, 답답했는데 몇 년째 이 교실에 다니면서 한자 한자 알아가고, 내 이름자를 쓰고, 간판을 읽으며 못 배운 한을 조금이나 풀었다고 한다. 글을 더 잘 알게 되면 자식들에게 편지 한 번 써 보는 게 꿈이라고. 똑 부러지게 할 말 다 하고, 쓰고 싶은 글도 쓰려고 멀리서 버스를 타고 온다.

받아쓰기 시간에는 100점을 받고 싶어 설레기도 하고, 틀리면 창피하기도 하지만 배우는 뿌듯함은 그에 비할 수 없다. 한글만 배우는 게 아니고 산수도 한다. 선생님한테 글씨 잘 쓴다는 작은 칭찬이라도 들으면 기분은 날아갈 듯 즐겁다. 자식들의 응원에도 한결 힘이 난다. 가끔은 잘 다니라며 차로 데려다 주기도 한다.

이 교실을 보며 드는 생각은 한 발 한 발 단단히 내딛는 늦깎이 공부하듯 이 재난을 확실히 물리쳤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코로나 19는 가고 우리들의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다반사’가 시작되고, 어느 곳에서든 이런 교실도 활짝 열려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정형 순창군립도서관장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