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휴열 미술관(관장 유가림)이 개관 첫 초대전으로 류재현 작가를 선택했다.

지난 1일부터 오는 7월 31일까지 열리는 초대전 ‘Over There’는 류재현 작가가 2019년 이후 2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의 주된 소재는 강이다. 정확히 말해 강 건너 ‘그 너머’의 풍경이다. 그 곳은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Utopia)가 아닌, 실재하지만 내가 있는 이곳과는 다른 장소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이다. 그곳은 아이들에게 다락방과도 같은 숨겨져 단절된, 시간도 멈춰선 신성한 나만의 장소이다. 현대사회의 피로한 우리 모두가 안식할 수 있는 장소이다.

그가 강을 새삼 주목한 것은 어쩌면 우연이었다. 어깨를 쉬어주기 위해 잠시 휴식을 갖던 지난해 섬진강의 아름다운 천담마을과 구담마을을 둘러보며 숲길에서 이어진 물길을 기억 속에 남겨 뒀다.

“그동안 길을 테마로 40년간 작업을 이어 왔다. 처음 생명도 없이 피폐한 아스팔트에서 시작해 숲으로 들어와서도 길을 잊지 않았다. 달라지는 게 있다면 이전 작품에서 길이 뚜렷했는데 최근에는 점차 희미해진 것이다. 그러나 나무와 수풀로 가려 졌지만 그 속에 길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람이 걷는 숲길이 있다면 물이 흐르는 길도 있다, ‘물길’이다. 물길도 있는 것이다. 이전 전시를 통해 한 두 점씩 선보였던 물길 그림을 이번에는 주된 소재로 삼았다. 아름다운 섬진강을 보면서 캔버스에 옮기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사실적이다. 작업은 바람결에 떨리는 녹색과 연두 빛 풀들의 작은 일렁임까지 감지하기 위하여, 작고 부드러운 모필로 그어대고 또 그어댄다. 가느다란 선과 터치의 무수한 반복과 겹치고 중첩되는 과정 속에서 화면에 원래 칠해두었던 검정색 바탕이 미세한 틈으로 보이게 되고, 그 틈 사이로 내밀한 호흡이 느껴지도록 화면을 조율해 나간다. 이것은 치열한 붓질의 반복적 과정을 통하여 적막한 사유의 세계를 열어 보여 자신의 심혼(心魂)을 감지해 보려는 일련의 행위이며, 겹치고 중첩되는 붓질은 숲속 길에 겹겹이 쌓여진 생명들의 시간들이며, 그것은 바로 숲과 바람과 빛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자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내가 시종일관 사실적 풍경을 그리며 전통적 붓질을 통해 그리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련한 빛이 비치는 사실적 풍경 속에는 누구나 언젠가 경험하고 감각했을 어떤 순간의 기억들이 담겨져 있으며, 그것이 시각적 자극을 통해 찰나의 순간에 무의식의 어느 지점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무의식의 어느 지점은 순산의 희열을 느끼거나 뭉클한 그리움을 불러오는 지점일 것이며 이를 통해 치유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내적인 의식 흐름은 여전 하지만 표현 방식은 계속 변화해 왔다. 소재가 숲에서 물로 이동한 듯하지만 ‘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한 채 ‘확장’했을 뿐이다. 표현 방법 또한 마찬가지다. 예전의 작품이 강한 콘트라스트로 관람객들의 눈을 유혹했다면 이번 작품은 그러한 큰 대비 없이 더 없이 편안한 색감으로 자리했다.

“아직도 배우는 시간이다. 나도, 작품도 어디로 갈지 모른다. 내 앞에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여정과 함께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가족의 든든한 지지가 있는 한 나의 ‘길’은 생명과 평화가 함께할 것이다.”

유가림 유휴열 미술관장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깔려 있는 류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신비롭다. 항상 빛과 바람이 가득한 작가의 작품은 미술관을 둘러싸고 있는 숲과 함께 우리에게 많은 위로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 미술교육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중에 있으며, 전주, 서울, 인천, 파리 등에서 17번의 개인전과 KIAF, AAF Singapore, 상해 호산옥션 등 국내외 아트페어, 옥션, 기획전 등에 참여하였으며 2021년 파리 Cite Internationale Des Art에서 입주작가로 머물며 작업함. 2012년 전라미술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전라북도미술관, 우진문화재단, 미래병원, Galerie Lazarew(Paris), 통인옥션갤러리, 교동미술관, 서신갤러리, 부안군청, 전주지방법원, 전주지방검찰청 등에 작품이 소장돼있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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