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껍데기

오피니언l승인2021.03.03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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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껍데기를 보면 허전한 생각이 든다. 빈 껍데기를 보면 더욱 그렇다. 알맹이가 빠져나간 허상 같은 존재. 눈에 비친 빈 껍데기는 참 보잘것없어 보인다. 조개껍데기처럼 생명까지 잃어버린 것도 있다. 그러나 빈 껍데기는 위대한 존재다. 약한 알맹이를 위해 자신의 몸이 부서져 가면서 보호하며 키웠던 껍데기다. 자신의 역할을 다한 화물차가 짐을 내려놓고 다른 화물을 찾아 떠나듯, 어쩌면 빈 껍데기도 성장한 알맹이를 내려놓고 또 다른 알맹이를 찾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오는 길이었다. 빈 박스를 실은 리어커를 할머니가 뒤에서  운전하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과 구부정한 모습으로 보아 팔순 정도는 되어 보였다. 아마 할머니에게 자녀가 있다면 내 또래 정도는 될 것 같다. 앞에서 끌지 않고 뒤에서 밀고 가는 이유가 이해되었다. 연세가 있어 드는 힘보다 몸무게를 이용해 뒤에서 미는 것이 쉬웠을 것이다. 보다 못한 직원이 리어커를 고물상까지 끌어다 주었다. 할머니는 요즘은 폐지 대부분 박스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아 돈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인사를 들은 직원은 가고 잠시 할머니와 함께 고물상에 있었다. 오늘 가져온 빈 박스는 3천 원 정도 될 것이라고 하며, 어제부터 1만 2천 원 정도 벌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고물상 사무실로 들어가고 나는 고물상을 둘러보았다. 고물상에는 산처럼 빈 박스가 쌓여있었다. 과자 박스가 많았지만, 드문드문 주소지가 붙어있는 택배 상자도 보였다. 고물상에 쌓여있는 상자 역시 빈 껍데기이다.

빈 껍데기의 시대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이 활성화되면서 사소한 일상 용품까지 배달하고
있어 포장지인 껍데기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 집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택배가 온다. 음식 하나에도 책을 주문할 때도 그냥 오는 법이 없다. 부서지지 않게 상하지 않게 단단하게 포장되어 온다. 포장지인 껍데기는 비록 자신의 존재는 없지만, 내용물이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

약한 물건일수록 귀한 물건일수록 껍데기가 튼튼하다. 작은 물건 하나를 배달하는데도 단단한 껍질이 필요한데, 연약한 인간이 생존하는데 얼마나 단단한 껍데기가 필요할까. 동물학에서 신생기 중에서 가장 약한 동물이 인간이라고 한다. 태어난 지 1년이 되어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약한 존재이다. 이런 인간을 성장하도록 감싸주고 보호해 주는 부모의 역할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며칠 전 오래된 드라마를 다시 보았다. 의학드라마였는데 안타까운 사연이 나왔다. 가난한 아버지 홀로 몸이 아픈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는데, 아이들 모두 뇌 이상으로 웃는 병이 앓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비가 없었다. 자신이 없다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아버지인 자신 때문에 아이들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고통스러워했다. 병원비를 벌기 위해 낮에는 노동하고, 밤에는 대리운전까지 했지만 독촉하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는데, 다행히 의사의 추천으로 소아암 지원단체에서 병원비를 지원받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사연이었다. 아버지로서 튼튼한 껍데기가 되어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

튼튼한 껍데기에만 튼튼한 알맹이가 있을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껍데기는 튼튼한 강도가 아니라 알맹이가 스스로 클 수 있도록 외풍만 막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나무들이 겨울을 견뎌내고 새싹이 돋을 수 있도록 추위 정도만 막아주는 역할만으로도 괜찮다. 연속극에서 아버지는 부모의 존재는 자녀들이 마음을 기대는 소중한 언덕임을 몰랐던 것이다.

내 지갑에는 신분증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어머니의 신분증이다. 어머니가 그리울 때 힘들 때 가끔 꺼내 본다. 마음의 위로가 될 때가 많다. 어머니의 유품을 태우면서 어머니 신분증을 지갑에 넣어 두었다. 신분증 속의 어머니는 환하게 웃고 있어 좋다. 1999년에 발급한 신분증인데, 어머니의 젊은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좋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반년이 지났다. 아직도 고향집에 가면 마음이 시리다. 왔냐면서 방문을 열고 달려올 것만 같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튼튼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늘 감싸주었던 어머니.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식을 걱정하던 어머니. 예순이 되었지만, 그런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것을 보니 나는 아직 껍데기가 필요한 알맹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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