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비의 노란 도포 자락, 대성전 마당에 융단으로 깔리고···

<김문철의 수묵으로 본 전북-8. 가을이 다녀간 전주향교> 전라일보l승인2020.11.29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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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가을은 노란 옷을 입고 왔다. 계절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전주향교를 찾았다. 늦가을 전주향교는 노(老)선비의 노란 도포 자락이 때마침 부는 바람에 흩날려 대성전 마당에 융단으로 깔리고 있었다.

전주시 교동에 있는 전주향교는 경기전 근처에 있었으나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가 태조 어진에 소란을 준다고 하여 지금의 화산동으로 이전하였다가 1603년(선조 36)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전주향교는 전라감영이 있던 곳의 향교로, 9칸씩 되는 동무(東?), 서무(西?)만 보더라도 여느 향교와는 달리 그 규모가 남다르다.

한옥마을 동쪽 끝에 있는 향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아 주는 만화루(萬化樓)가 있다. 누각의 어원은 공자지도 만물화생(孔子之道 萬物化生), 즉 공자님의 도로 만물이 교화된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만화루는 향교 정문에 세워진 2층 누각으로, 유생들의 여름철 강학과 휴식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누각 위로 올라서자 전주천을 넘어 남고산성이 부드럽게 한눈에 들어왔다.

오른편으로 한옥마을의 사람 사는 모습이 보이고 왼편으로는 한벽루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향교에 들어서기 전, 선(仙)과 속(俗)의 경계에 있는 듯했다.
음, 양 두 기운의 상호작용으로 만물이 생성하고 일어난다는 뜻의 일월문(日月門)을 들어서자 양쪽에 커다란 은행나무의 호위를 받고 서 있는 대성전(大成殿)이 위용 있게 다가왔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인 대성전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으며 공자(孔子)를 비롯한 5성(五聖)과 최치원을 비롯한 우리나라 유학자 열여덟 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대성전 뒤편에 있는 명륜당(明倫堂)은 당시 중등과정의 교생들을 가르치던 교육기관이었다. 전주향교는 앞에 배향공간인 대성전을 두고 있고, 뒤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자리하고 있어 교육 기능보다는 제향 기능을 우위에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서원이나 향교 마당에는 어김없이 은행나무가 있다. 공자가 제자를 가르칠 때 은행나무 아래 또는 은행나무 단에서 가르쳤다고 하여 은행나무가 심겨있다. 대성전과 명륜당 앞마당에도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계절에 맞춰 노란 옷을 입고 있었다. 2억 8천 년 전부터 있었다는 은행나무는 빙하기 시대 모든 동식물이 멸종하였을 때에도 살아남은 종이다.

또 은행나무는 한곳에 오래 머물며 몇백 년을 살 뿐 아니라 벌레가 타지 않아 올곧은 선비에 빗대기도 한다. 그런 연유로 향교나 서원을 지을 때 심었으며 은행나무 수령과 향교의 건립연대는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주향교의 은행나무 수령은 400년이 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산수유, 개나리 등 봄꽃의 노랑은 우리를 들뜨게 하여 마음을 밖으로 향하게 한다. 그러나 은행나무가 주는 가을의 노랑은 우리를 설레게 하는 한편,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도 한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지나온 길을 조용히 돌아보라는 자연의 깊은 뜻일 수도 있겠다.

지금쯤 노란 잎이 다 지고 오롯이 나무의 참모습으로 서 있을 전주향교. 겨울의 문턱에서 명륜당 마당을 느리게 거닐며 400년 전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어보자. 글 읽는 소리에 묵묵히 늙어 온 은행나무 둥치를 살포시 안아보고 가만가만 쓸어보자. 만화루에 올라 전주를 포근히 보듬고 있는 남고산성을 바라보며 정신없었던 올 한해를 조용히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글 김인숙 시인 그림 김문철 전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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