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만 해도 힘들었는데 장마까지 겹쳐서, 어디 이걸로 먹고 살 수 있을지…”.

울타리는 가장 약한 곳부터 벌어지기 시작해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다. 폭우가 쏟아지면서 폐지를 주워 근근이 생활하던 이들이 쓸려 내려가고 있다. 코로나19로 가게나 식당 등에서 나오는 박스가 크게 줄더니, 이제는 역대 최장 장마기간 일감도 줄어드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12일 찾은 전주시 진북동 한 길목. 이따금 리어카나 자전거 뒤편으로 상자나 헌옷, 고철류 따위를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린 채 걸음을 딛는 노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차곡차곡 접은 상자를 하나라도 더 올리려다보니 높아진 탑은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칭칭 묶인 끈 아래에서 불안하게 흔들렸다. 새벽부터 시작해 대여섯 시간에 걸쳐 파지 수거를 마친 노인들은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서도 제각기 고물상으로 향하는 걸음을 바삐 했다. 조글조글한 이마부터 시작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이날 자전거를 끌고 수거에 나선 한모(87)씨는 오늘 모은 파지의 양을 묻는 질문에 대답 대신 손에 쥔 3500원을 내보였다. 아침 6시께부터 4시간 반 동안 자전거를 몰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더위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모은 돈이라고 했다.

한 씨는 “요즘 같은 세상에 자식들도 부모에게 의지할 수 없고 부모도 자식에게 의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뭐라도 해보겠다고 파지를 모으러 다니고 있는데, 요즘은 돈 보고는 못 할 일이 되고 있다”며 “줍기만 하면 돈 버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번 달에는 비까지 많이 내려서 거의 나와 보지도 못했고 파지 값도 많이 떨어져 월수입이라고 할 것도 못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리어카에 파지를 담아 끌고 온 엄모(70)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번 달 월수입을 묻는 질문에 혀를 끌끌 찬 엄 씨는 “이렇게 비가 오는 데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느냐”며 “거의 공치고 오늘 겨우 나왔는데 손에 쥐는 것도 푼돈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하루 온종일 일을 해 파지 100kg을 모아 받는 돈은 겨우 5천원 남짓. 비에 흠뻑 젖기라도 하면 받는 돈도 무게를 절반가량 깎아 주다보니 장마철만 되면 파지 줍는 이들은 힘이 드는데, 이번 장마기간은 역대 최고를 기록한 데다 올 초부터 이어진 코로나19의 영향까지 겹쳐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것이 엄 씨의 설명이다.

이날 만난 진북동 한 고물상 관계자는 “파지 값이 비쌀 때에는 kg당 200원에서 250원까지도 했지만 지금은 50원에 불과하다”며 “원래도 장마일 때는 다들 일을 쉬시는 등 사정이 어려워지지만, 올해는 특히 코로나까지 겹치며 상가에서 내놓는 상자도 줄고 해 다들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하는 한편, “열심히 일하는 분들인데 늦게까지 열중하다 사고를 당해 돌아가시는 분들도 계시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생활고를 겪는 이들도 많아 지원 같은 게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편, 전주지역의 경우 약 250여명 파지 줍는 노인이 있으며, 5분의 1 정도인 60명가량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추산된다./김수현 기자·ryud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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