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완주군 삼례읍 석전리 청등마을. 골목골목 좁은 마을길을 따라 조그마한 소나무 숲이 딸린 양봉 농가를 찾았다. 소나무 아래에는 500개(군) 남짓한 벌통에서 꿀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그곳에서 봉군(蜂群)관리에 한창이던 유희영(사진)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벌통 한 개를 개봉해 현재 겪고 있는 피해를 호소했다. “보세요. 벌통 안에 있는 소비면마다 꿀벌로 가득해야 하는데 없잖아요.”

벌통 안에는 10개 안팎의 소비(巢脾, 꿀과 식량을 저장하는 벌집)가 설치돼 있었다. 유씨가 소개 1개를 들어 올리자 20마리 남짓한 일벌과 조금의 꿀만이 차있을 뿐이었다. 유씨는 “원래 이맘때면 소개에는 유충과 그것을 관리하는 일벌들로 가득해야 하는데, 보는 것과 같이 거의 하나도 없다. 이대로라면 나에겐 내년 양봉농사도 문제지만, 크게 봤을 때는 꽃의 암수가 수정을 못해 농사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군집 붕괴현상 ‘속출’ = 8월은 양봉농가들에겐 봉군을 관리하는 시기다. 4~6월의 기간동안 꿀 채집을 끝낸 후로 이달까지 여왕벌을 이용해 유충을 낳는 등 꿀벌의 개채수를 늘리는 작업을 한다. 여름철 봉군관리가 잘 돼야지만 월동을 나기 쉽고, 내년 꿀 채집량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중요한 때다

양봉농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벌통 1개(군)개에 들어있는 소개는 10개에서 12개 정도가 설치된다. 이런 1개 소비에는 보통 2000마리 정도(여름철 1500마리)의 벌이 있어야 하고, 그런 소개가 벌통 1개당 6개가량 유지돼야만 안전한 월동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봄철에 봉군형성이 불가능해 전혀 꿀을 딸 수 없는 사태가 생겨난다.

최근 도내에서 군집 붕괴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일벌들의 개체수가 줄면서 결과적으로 여왕벌과 유충 등 벌 군집의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벌통마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어 도내 양봉 농가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유씨는 “완주, 익산, 무주 등 3개 지역에 6곳의 양봉을 키우고 있는데, 지역을 불문하고 벌통 1개당 제대로 된 소비가 3~4개에 불과하다. 이런 현상은 주변 양봉농가도 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꿀벌이 사라진다. 원인은‘폭염’= 양봉 업계는 벌통에서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를 크게 2가지로 꼽고 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밀원식물(꿀의 원천이 되는 식물)의 태부족이다. 올 여름철 연일 이어지는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 탓에 밤꽃과 대추꽃, 야생화 등 꿀벌들이 꿀을 갖고 올 수 있는 꽃들이 말라죽어가면서다. 화분 공급 부족은 유충관리 및 꿀벌들의 체력유지에도 심한 타격을 입히면서 개체수 감소를 낳게 됐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유는 폭염으로 인한 벌통내부 온도 증가를 문제 삼는다. 여름철 벌통내부의 적정온도는 32~35도다. 그 이상 온도가 오르면 유충 생육에 문제가 생기면서 꿀벌들이 벌통내부 온도를 낮추기 위해 날개로 과도한 선풍(煽風)작업에만 몰두한다. 그렇게 되면서 꿀벌들의 수명이 급격히 단축하게 되고, 꿀벌들의 꽃가루 채집 등을 차질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결국 폭염으로 유충도 줄고, 꿀벌도 수명이 줄면서 군집이 붕괴되고 마는 것이다.

한국양봉협회 전북지회 김종화 지회장은 “꿀벌의 수명은 50일이고, 유충이 성충이 되는데는 21일이 걸린다. 그 때문에 여름철 유충을 생육하고 개체수를 늘려야만 내년 양봉을 할 수 있는데, 이번 21일간 폭염이 이어지면서 꿀벌이 죽고, 유충이 없어 양봉농가 피해는 기하급수적”이라며 “양봉협회에서 피해조사하라고 해서 지침내려와 조사하고 있는데 현재 완주, 고창, 남원, 부안, 익산 등 곳곳에서 피해현황이 계속 보고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폭염피해를 겪은 축산농가처럼 양봉농가도 폭염 피해에 합산하길 바란다”면서 “현재 양봉농가 지원은 타 광역단치단체 지원의 20% 수준에 불과하고 있다. 많이 바라지도 않고 다른 지역의 절반만이라도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에 도 관계자는 “꿀벌이 더위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게 아니라 날씨에 2차적인 간접피해를 받는 것 같다”면서 “아직은 피해보고된 게 없기 때문에 피해집계 나설 지 여부를 내부적인 검토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한편, 도내 양봉 농가는 2011년 기준 모두 1111가구 농가로 13만 3553군을 생육하고 있으며, 농가수로는 고창, 정읍, 익산, 완주 순으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김승만기자·na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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