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월명암, 법당에서는 스승이 주무시고 법당 아래선 제자가 자고 있다. 어쩌다 벌떡 깬 제자가 소리를 뽑아내자 스승 왈 “야 이놈아, 소리하것다”

그로부터 70여년, 판소리 ‘수궁가’의 독보적 창법을 통해 전북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고 전정민 조소녀 최승희 등 내로라하는 창자들을 배출하기까지…외골수 소리인생이 펼쳐진다. (사)추담판소리보존회(이사장 김세미)가 펴낸 ‘추담 홍정택 선생 판소리와 생애(글․자료 양규태)’.

‘제5회 추담전국국악경연대회’를 기념, 추담 선생의 생애 및 업적을 남긴 것으로 ‘추담 선생 약전(2007)’에 이어 두 번째다.

‘1부 추담 홍정택 선생의 생애’에서는 창극을 좋아라하던 고교 시절부터 여전한 예술혼을 발하는 현재까지를 시간 순으로,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특히 입문 과정이 흥미롭다. 한 번 들었던 창을 기억하며 산에 올라 되풀이한 결과, 창극단의 눈에 든 탓이다.

임방울(1905-1961), 이기권(1905-1951)이라는 두 거목도 여기서 만났다. 무대의 참맛을 보여주고 색깔을 갖도록 한 건 임방울이지만, 영의 소리를 끌어낸달지 마음가짐을 잡아준 건 이기권이였으니 누구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선생인 셈.

‘조선 성악연구회’ ‘조선창극단’에서 부인 김유앵을 만나 부부무형문화재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후 예술혼과 가르침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 ‘전주 성은여고 판소리 전임 강사’ ‘전북도립국악원 전임강사’ ‘추담판소리고법연구소’로 이어지는 중이다.

‘2부 국악인 추담 선생의 재조명’에는 제자가 바라보는 그와 가족이 바라보는 그가 있다. 문하생인 이순심 뫼솔 이사장은 “먼저 사람이 되고 국악인이 되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다”면서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도 전주 중앙시장의 허름한 옥상 단칸방에서 머물게 한 것도 그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막내아들인 홍성기 국악인도 “새벽 4시 완산칠봉 정상에서 연습을 하셨다. 아흔을 넘긴 지금도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한 시간이 넘게 가르치시는 걸 보면 놀라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제자이자 외손녀인 김세미 이사장의 발간사와 입던 모시와 잡던 북, 부인과의 단란한 한 때, 수궁가를 열창하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 여러 점이 실려 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