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과 ‘인구론’은 요즘 세태를 꼬집는 신조어다. 이는 ‘문과라서 죄송합니다’와 ‘인문계 졸업생의 90%는 논다’의 약어다. 주로 대학에 관련된 것이지만 고등학교 문이과 과정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고 본다. 어쨌든 인문학을 전공해서는 밥 먹고 살기가 어렵다는 인식이다. 날로 치열해지는 취업전선에서 실용학문이 득세하는 현실이 이 신조어에서 잘 드러난다.
  취업 전선에서 대학 인문학 전공자는 갈 곳이 없는 처지다. 드물게 뽑는 곳이 없지는 않지만 그 숫자도 적고 계약직 등 처우도 형편없다. 그러다보니 전체 인문계 졸업자 중 전공을 찾아 직장을 얻는 비율이 겨우 절반에 그친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입으로는 인문학의 가치를 외치고 실제로는 철저히 외면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인문학은 특히 천덕꾸러기가 됐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에서 인문학은 1호 수술 대상이 됐다. 대학들은 인문학 관련 학과를 폐쇄하거나 정원을 줄이는데 앞장섰다. 기준은 취업률과 연구비, 산업 수요 등이다. 이런 방면에서 인문학이 설 자리는 매우 좁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높은 편이다. 국회는 지난 2015년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인문학의 융복합을 통한 활로 개척에도 많은 노력들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은 냉랭하다. 과학기술과는 동떨어진 인문학이 ‘무용’하다는 게 시장의 판단인 것이다.
  이런 상황서 최근 고교 이과의 ‘문과 침공’이 문제가 되고 있다. 대입 수능에서 미적분 수학을 선택한 이과생들이 수학에서의 압도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주요 대학 인문계열에 대거 합격한 것이다. 서울교육청이 분석한 2022학년도 서울 주요대학 정시 인문계열 지원자 16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2개 대학 중 8개 대학 인문계열에서 이과생 교차지원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서울대를 비롯해 연세대, 서강대, 경희대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이제 취업전선에서만 문과가 설움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입시에서도 문과생들은 수학을 앞세운 이과생들의 공세에 힘없이 무너지는 모습이다. ‘문송’과 ‘슬픈 인문계’는 이제 고교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수도권 대학에 반도체 학과 증원을 놓고 사회가 떠들썩하다. 이런 식으로 가면 ‘이공계 천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경제에 밀려 인간의 가치 탐구와 표현활동인 인문학은 고사 직전까지 온 것 같다. 과연 교육의 목표가 산업 인재 양성으로만 향해도 되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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