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근식 국민연금공단
 만약 내게 행운이 있다면 어떤 복이 찾아올까? 내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복권에 당첨이라도 될까. 헛된 생각임을 알지만, 그런 상상을 할 때에는 행운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행운이란 무엇일까. 예상하지 못한 아주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쓰는 말이다. 실력 이상의 결과를 얻게 되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동계올림픽에서 실력보다 행운으로 금메달을 딴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 브래드 버드가 운 좋게 성공하다는 뜻으로 어학사전에 숙어로 등록될 정도로 행운의 대명사가 되었다.

 주인공인 브래드 버드는 호주의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였다. 그는 호주 아니 남반구 최초로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실력보다 행운으로 얻은 금메달이라 인기가 더 많았다. 호주에서는 기념 체육관을 만들고 기념주화를 발행하고 그를 형상화한 레고 장난감까지 제작되었다. 또한 높은 인기 덕분에 광고를 찍어 돈도 많이 벌었다.

 그는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1000미터에 출전했다. 나이가 서른이 넘어 마지막으로 참가한 올림픽이었다. 실력이 세계 40위권 정도여서 메달 획득보다는 참여하는데 의미를 두었다. 호주 역시 그에게 메달을 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조차하지 못했다. 그는 운이 좋은 남자였다. 출전한 시합마다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앞사람이 쓰러졌다.

 행운의 시작은 준준결승전부터였다. 이름만 들어도 바로 알 수 있는 선수들과 함께 조편성이 되었다. 미국의 오노선수, 그리고 캐나다와 일본선수였다. 상대는 세계 랭킹에서 그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선수였다. 쇼트트랙 준준결승은 4명 중 2명이 준결승에 오른다. 출발부터 그는 한참 뒤처진 꼴찌였다. 쇼트트랙 경기는 좁은 트랙을 도는 경기라 선두다툼이 심하다. 결승선을 도착할 무렵 한명이 쓰러지면서 그는 3위로 들어왔다. 준준결승전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짐을 쌌다. 그런데 행운이 있었다. 비디오 판독 결과 2위로 들어온 선수가 선두다툼에서 반칙으로 실격 당했다. 그는 운이 좋게도 2위가 되어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 역시 행운이었다. 두 바퀴를 돌았을 때 선두권과 한참이나 뒤쳐졌다. 함께 달리는 선수들은 세계 톱클래스였다. 세계랭킹 1위 우리나라의 김동성 선수를 비롯한 캐나다, 일본, 중국선수였다. 결승선을 도착할 무렵 선두다툼으로 앞서가던 김동성 선수와 함께 3명이 한꺼번에 넘어졌다. 경기를 포기하고 천천히 들어오던 그는 여유 있는 2위가 되어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은 행운이 극치였다. 마치 연출한 것 같았다. 결승에 진출한 선수는 우리나라 안현수, 미국의 오노, 중국의 리자준, 캐나다의 투르코였다. 그를 제외한 선수들은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경험이 있는 굉장히 실력 있는 선수였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메달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행운의 사나이였다. 결승선을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선두보다 반바퀴 정도 뒤쳐 달리고 있었다. 금메달을 따기 위해 선두다툼이 치열했다. 선두다툼 과정에서 김현수, 오노 등 앞서가던 선수 4명이 스케이트 날에 걸려 한꺼번에 넘어져 마지막으로 달렸던 그가 1등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만약 실력이 좋아 선두권에 있었다면 그 역시 넘어졌을 것이다. 그는 실력보다는 행운으로 금메달을 따게 되었다. 그 경기가 끝난 뒤 모든 전문가들은 브래드 버리를 행운의 사나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행운보다는 내가 이긴 것이 아니라 10여 년간 최선을 다한 나에게 주는 상인 것 같다고 했지만 그가 행운의 사나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행운은 마음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한다. 인생에서 브래드 버리처럼 큰 행운이 찾아오기란 쉽지 않다. 행운은 꼭 브래드 버리의 행운만은 아닐 것이다. 큰 행운도 행운이지만 불행이 찾아오지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자녀가 건강하고 반겨주는 가족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지난주부터 주말부부를 시작했다. 서울 발령을 받았다. 주말에 집으로 돌아오면 반겨주는 가족이 있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일 것이다. 지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나 자신이 행운의 사나이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