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은 인심도 좋고, 사람도 좋고, 잘 사는 건 아니어도 지역 사람들이 다 좋아! 이짝으로 이사와"

늘 환한 얼굴로 만경을 찾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주시는 남리마을 최규련 어머님은 오늘도 방문객들에게 행복미소를 선사해 주신다.

따스한 미소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서김제IC에서 나와 5분 남짓 운전하다 보니 구비구비 만경능제가 펼쳐진다. 만경평야 젖줄인 능제는 풍요로운 평야를 적시기 위해 늘 풍성한 물을 담고 있다.

만경능제를 한참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덧 시름도 잊혀지고 해는 뉘엿뉘엿 야산에 걸려있다. 금빛으로 평야를 물들이던 해는 금새 일몰의 아름다운 하늘로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아 인생의 덧없음을 일깨우며 오늘의 일과를 마친다.

만경은 예로부터 인물이 많이 나와 김제 읍내와 별개로 하나의 읍내를 형성해왔다. 능제 옆의 만경중고등학교는 지역인재의 산실로 오늘도 후학들이 학업에 열심이다.

만경중고등학교 옆에 시선을 빼앗는 건물이 있어 가보니 한국제재소의 근현대사를 담고 있는 만경제재소가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었다. 규모만 봐도 당시 이곳이 얼마나 북적였을지 짐작이 갔다.

만경 남리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만경제재소, 제재소 중심으로 요즘 남리마을에는 새바람이 불고 있다. 다른 지방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남리마을도 이촌향도의 대세 속에 많이 위축돼 있었다. 거리엔 한때 명성을 자랑했을 오래된 간판이 아직도 보존돼있어 지역민들의 바램이 아직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바램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남리마을 사람들은 유성기 이장을 중심으로 마을에 새바람을 불어 넣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한때 만경을 들썩이게 했을 5일장을 다시 연 남리마을은 요즘 다양한 행사를 기획, 추진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각자 생산한 먹거리를 가져와 팔기도 하고, 지역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타지역 예술인들도 동참해 뛰어난 공예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5일장이 축제화돼 음식을 나누며, 흥을 주체할 수 없는 이들의 무대도 마련했다. 

마련된 무대 순서에는 농부합창단(지도. 김진희 교수)의 열창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들의 노래를 듣다 보면 듣는 이들로 하여금 전공자들의 무대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오늘도 만경의 옛날 거리 복원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는 유성기 이장은 만경읍민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고.유병오 선생(전.전북기초의원)의 아들로, 선대의 발자취를 따라 만경읍을 다시 되살리겠다는 포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만경읍은 거주인구가 현재 총 3000명이 안되는 작은 읍이지만,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망있는 인물들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이 성장동력과 역량의 구심점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지나칠 수 없어 남리마을 이장을 맡아 내가 낳고 자란  이곳 만경을 살려보고자 나서게 됐습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찾듯이 많은 발품 속에 마을 만들기 사업을 알게 됐고, 이제는 만경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 디뎠습니다"

이러한 열정과 많은 이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남리마을은 김제시 생생마을로 선정되는 등 잃어버린 활기를 서서히 되찾고 있다. 

행복미소의 주인공 최규련 어머님은 따스한 제재소 앞마당에서 아내 김진희 교수에게 드립커피를 건네는 아들 유성기 이장을 오늘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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