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근식 국민연금공단
 
 내 것인데 나보다 남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릴 때 들었던 수수께끼다. 정답은 이름이다. 자기 것인데 분명 대부분 다른 사람이 사용한다. 자신이 사용할 때는 새로운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뿐이다. 자신의 대명사인 이름이지만 우리 생활에서 이름 대신 다른 호칭이 대신할 때가 많다. 직장에서는 직책이, 가정에서는 아버지 어머니라는 호칭이 그것이다.
 나도 아내에게 직장 동료에게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집에서는 아내에게 아이엄마, 아이들에게는 이름을 부르고, 직원에게는 성에 직책을 붙여 정 부장. 박 차장, 홍 대리, 송 주임이라고 부른다. 직속 상사에게는 성을 빼고 직책만 부르기도 한다. 
 남들이 나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아이 아빠, 아이들은 아버지라고 하고, 직장 동료들은 성조차 생략한 직책만 부른다. 공공기관의 지사 책임자로 있는 나는 지사장이란 호칭으로 불려진다. 
 사무실에서 신입직원들끼리 서로 이름을 부르며 말을 트고 지내는 것을 가끔 본다. 직원들 간의 관계는 부르는 호칭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말을 편하게 하고 이름을 부르면 아주 친한 사이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직원들을 보면서 나도 사무실에서 누군가와 말을 편하게 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직장 동료가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을 가진다. 
 우리 아이들은 다른 가정과는 달리 내게 부르는 특이한 호칭이 있다. ‘근식씨’다. 물론 자주 부르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부탁할 일이 있거나 애교를 부릴 때 그 호칭을 사용한다. 처음에 큰 애가 농담으로 한번 불렀는데, 그 호칭이 좋은지 둘째도 셋째도 가끔 그 호칭으로 나를 부른다. 부모의 이름을 자녀가 부르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 관례상 금기사항으로 되어 있지만, 나는 아버지라는 호칭보다 아이들의 정겨움이 느껴지는 근식씨라는 호칭이 더 좋다.
 오늘 오후에 휴대폰이 울렸다. 사무실 건물 옥상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어릴 때 고향 인근 마을에 살았던 고등학교 친구였다. 고등학교 다닐 때 많은 친분을 쌓지는 못했지만,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친구들의 경조사나 다른 볼일이 있으면 통화를 한다. 전화기를 통해 그 친구의 정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근식아.’ 말을 놓으면서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좋았다. 전화한 이유는 간단했다. 며칠 전 이사를 했는데 오늘 출근길에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보았다는 전화였다. 시간이 되면 찾아오겠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친구와 통화를 마쳤다. 
 전화를 끊고서 최근 내 이름을 들어 본 것이 언제였던가를 생각해 보았다. 이번 주, 지난주에는 없었다. 한 달 전쯤에 대학 친구와 통화에서 마지막으로 이름을 들었던 것 같다. 오늘 고등학교 친구와 통화하고 난 뒤 내가 부르는 호칭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름을 불러주고 말을 트고 지내는 관계. 부담 없고 마음이 편한 관계일 것이다. 나도 말을 터고 상대의 이름을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에 많았으면 좋겠다. 성에 직책을 붙여 부르는 호칭보다, 이름 뒤에 ‘씨, 님’이라고 부르는 호칭보다 ‘야, 아’ 라는 호칭을 붙여 부를 수 있는 그런 관계의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는 어깨동무라는 말을 좋아한다. 동무라는 말은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 친구의 옛말인데, 한때 친구보다 많이 사용되었다. 어깨에 서로의 팔을 얹고 나란히 걷는 동작인 어깨동무. 얼마나 정겹고 좋은 동작인가를 상상해보라. 어릴 때 친구 서너 명이 어깨동무하며 시골 동네 골목을 누비던 시절이 생각난다.
 객지 생활 40년이다. 이제는 객지가 고향이 되었지만 못내 아쉬운 것이 있다. 말을 트고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친구가 가까이에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깨동무 하던 친구들이 모두 자기 삶을 위해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어 만나기조차 쉽지 않다. 더욱이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서 모임조차도 어려워졌으니 내 이름을 듣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오랜만에 걸려 온 친구의 전화 한 통이 어깨동무하며 골목을 누비던 때를 그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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