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런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게 잡지 않고 슬그머니 다가와 묵묵히 지켜보는 어른. 자연스럽게 후배의 고민을 들어주고, 듣더니 자기 자신을 믿으라며 따뜻한 말을 건네는 선배. 8일 한옥마을 대수공방에서 만난 유대수(59) 화가는 상상 속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예리하고 냉철하게 상황을 보고, 속 깊은 위로와 따뜻한 격려를 전달하는 대화 방식은 인상적이었다. 

화가는 지난해 연말 ‘백인청춘예술대상’을 수상했다. 인터뷰 시기가 한창 지났지만, 팬으로서 화가를 만나고 싶었다. 사심으로 시작된 인터뷰는 화가 유대수의 고민과 인간 유대수의 내공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유대수 화가가 수상한 ‘백인청춘예술상’은 지역 청년예술인에게 ‘귀감’이 되는 중견예술인에게 주어지는 민간 예술상이다. 그는 “백인청춘예술상 후보가 됐다고 들었을 땐 마냥 기분이 좋았는데, 문득 후배들이 주는 상을 벌써 받아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후배 예술인들이 괜찮은 선배라고 생각해서 주는 상이니까 좋았지만, 여러 감정이 교차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현재 활동하고 있는 청년예술인들이 계속해서 열심히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묵묵히 ‘자신의 것’을 쌓다 보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예술인에게 해줄 말은 ‘열심히 하라’는 말밖에는 없어요. 그리고 예술의 힘을, 자신을 믿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2~3년간 활동했지만,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조바심이 들기도 하고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예술인들이 다른 직업군으로 넘어가는데, 힘든 상황에서도 버텨낸다면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이 남게 된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사실 유대수 화가는 10년 가까이 ‘월급쟁이’로 살아온 예술가다. 전주서신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했고,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오랫동안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문화재단 설립과 문화정책 제시 등 행정에도 발을 담갔던 인물. 이 때문일까. 그는 예술가는 눈 돌리지 말고, 자신의 것을 차근차근 쌓아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청년’으로 불렸던 시기에 저도 여러 일을 했는데 뒤돌아보니까 제 물건이 없더라고요. 제가 문화정책에 관련된 다양항 형태의 용역 또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그건 ‘유대수’의 것이 아니라 기관의 것이었어요. 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건 결국 그림밖에 없었어요. 그걸 깨닫는 순간, 진행해 온 일들을 정리하고 작업에만 몰두하게 됐죠”

전업 작가로 전향한 뒤, 바깥출입도 자제하고 작업에 열중한 유대수 화가. 그렇게 3~4년을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기회’라는 게 찾아왔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니까 사람들이 ‘유대수가 제법 그리네’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개인전을 시작으로 활동을 꾸준히 하니까 이제야 아트페어, 갤러리 등에서 초청받고 있어요. 일부러 먼 지역에서 기획전시 제안도 해주고, 그림 사고 싶다는 연락도 받게 됐죠. 오로지 그림에만 집중하니까 ‘유대수’ 이름이 알려진 것 같아요”

화가로 치열하게 살아간 그는 “이제야 손이 풀린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가지 당부를 전달했다. ‘청년’이라는 새싹에 물을 주는 것도 좋지만, 중장년 예술인들에 대한 처우 개선도 필요하다고 했다.   

”중장년, 나아가 노년에 대한 배려는 청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아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그건 마흔살 쯤 되면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죠. 솔직히 젊어서 예술하겠다고 덤비는 사람은 많은데 20년 후에 지역에서 예술인으로 계속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1~2명에 불과해요. 예술판에서 버텨서 살아남았는데 4~50대라는 이유로 소홀하게 대하는 건 아닌지 짚어봐야 해요. 개인적으로 지역 4~50대 화가들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질기게 버티면서 꾸준히 작품을 매만졌어요. 지역 문화판에서 살아남은 그들에 대한 지원과 포상이 필요하다고 봐요. 결과적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예술인들이 오랫동안 지역에서 활동 할 수 있도록 탄탄한 예술환경이 구축돼야 할 것 같아요"

유대수 화가는 전주에서 출생해 홍익대학교 판화과를 졸업하고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전주서신미술관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기획자로 활동했으며 2007년 동료들과 (사)문화연구 창을 만들어 지역문화예술 담론을 형성하고 다양한 문화정책을 만들었다. 전주한옥마을에서 대수공방을 열고 창작활동에 집중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개관 20주년 기념 초대전 ‘몽유남천’ 개인전을 열었다. 올해 12월에는 우진문화공간에서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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