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으려다 멈춘다/내디디려는 찰나와 마주친 턱/꼼짝하지 않는다/들어갈 것인지 돌아갈 것인지/발톱 세운 바람은 문지방의 먼지를 긁고/뒤에 서 있던 어둠, 스민다/고양이 눈빛 같은 적막이 천천히 엎드린다/시간이 할퀴어지기를 기다린다/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은/목덜미 털이 꼿꼿하게 선다/체념은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하지만 그의 앞발은 거기까지다/거두어들인 날카로움을 숨기고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출입문 열 때마다/한 발을 들고 서 있는/드난살이 적막('문턱' 전문)"

배귀선 시집 '점멸과 침묵 사이(현대시)'에 곧잘 포착되는 경계의 이미지들은 망설임이나 서성거림의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이를테면 그의 작품 '문턱'에서의 표현들은 이쪽과 저쪽의 경계이자 사이이자 틈이자 공백 같은 것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이 작품은 문턱을 넘으려다 멈춘 순간에 주목하는데 "들어갈 것인지 돌아갈 것인지"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순간의 망설임이나 서성거림은 건널목에서의 상상력이 내포하고 있는 경계나 사이, 틈이나 공백을 보여준다. 또 배 시인의 시집 곳곳에 자리 잡은 적막이나 침묵을 만나는 것도 이례적이지 않다. 

"보이지 않는 너를 찾아 침묵이 시작됐다 어둠을 오려놓은 케미라이트 둥근 빛만큼 모아지는 우연에 운명을 걸고픈 나의 생이나 콩알떡밥 먹겠다는 너의 무모함이나 매한가지, 기억만으로 모으는 집어는 헛방이다(중략) 단 한번의 찰나를 손끝에 모으는 순간 살아온 날들을 미련 없이 털어내는 몸짓을 나는 손맛이라 하였는데, 네 상처는 사실 네가 나를 느끼는 손맛일 수도 있겠다는//기다린다는 것은 내가 마늘에 꿰어 있다는 말이다('고수' 중에서)

원광대학교 강연호 교수는 "대개 첫 시집을 발간하게 되면 저자가 가장 공을 들여 궁리하는 것 중 하나가 제목일텐데 '점멸과 침묵 사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배귀선의 시집은 침묵의 시편으로 읽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강 교수는 이어 “세상의 모든 고독이 어찌 고스란히 이해될 수 있겠는가. 고득의 이해란 섣부른 공감이나 어설픈 위로의 형식일 뿐”이라며 “이 세상의 모든 고득은 결국 오독으로만 읽혀진다”고 덧붙였다. 

부안에서 태어난 배 시인은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2013년 문학의 오늘을 통해 등단했다. 저서로는 ‘신춘문예당선동시연구’가 있다. 현재 원광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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