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면을 들자면 몽골 기병과 로마 보병을 드는 경우가 많다. 두 군대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는 원동력이었다. 물론 시대가 달라 이들이 직접 부딪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호사가들은 이 두 군대가 맞붙으면 누가 이길 것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먼저 10만 명 규모의 몽골 기병은 잘 알려진 대로 빠르고 잘 훈련된 데다 용감했다. 전략 전술 면에서도 그 어느 군대에 못지않게 빼어났다. 하루 100km에 달하는 속도로 움직였는데 이는 적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중국 사서에는 “그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몰려왔다가 번개처럼 사라졌다”는 기록이 있다. 위장 후퇴 전술이나 매복 공격으로 적을 무찔렀고 가벼운 무장에 말린 육포 식량 등 장거리 원정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했다. 게다가 몽골 말은 속도는 다소 뒤지지만 지구력과 안정성이 뛰어나 전투에 적합했다.

로마 군단은 대조적이다. 밀집대형을 이룬 보병이 주력이었다. 기병은 보병의 좌우에 배치됐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적의 측면이나 후방을 쳤다. 보병은 창과 단검이 주력 무기였는데 특히 창은 무겁고 날카로워 적의 방패도 뚫을 정도였다. 로마 보병은 백병전에 아주 능했다. 창을 던져 적을 일단 제압한 뒤 단검으로 적을 죽이거나 치명상을 입혔다.

그렇다면 두 군대가 부딪치면 어떻게 될까.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몽골 기병처럼 선거혁명을 이루겠다고 하자 추미애 새천년민주당 선대위원장이 ‘또박또박 전진하는 로마 보병’이 되겠다고 맞섰다. 결과는 몽골 기병 열린우리당의 압승이었다. 152석을 차지해 원내 1당이 됐다. 반면 새천년민주당은 9석에 그쳐 ‘꼬마 민주당’으로 전락했다.

요즘 대선을 앞둔 정가에 몽골 기병론이 한창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선대위와 관련, “몽골 기병처럼 필요한 일들을 신속하게 하고 결과물로 답하는 당으로 바꿔나가겠다”고 언급했다. 이에 국민의 힘 대선 캠프의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국민의 힘은 이제는 중원을 향해 두려움 없이 몽골 기병처럼 진격하겠다”고 응수했다.

2004년 총선 때와는 달리 양 진영 모두 몽골 기병을 앞세우니 같은 전법을 쓰는 셈이다. 이제 승부는 어느 진영이 몽골군처럼 굳게 뭉친 단일 대오를 형성해 일사불란함을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여야 모두 선대위 구성에서 만족할만한 단결력을 과시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어쨌든 로마 보병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이 시대가 속도전을 선호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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