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시대 왕은 한 명이었다. 왕은 즉위한 후 죽을 때까지 왕위를 지켰다. 두 명의 왕은 절대 왕정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옛사람들은 그래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고 땅에는 두 명의 왕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 역사에서 조선조 초기 왕이 세 명까지 존재한 적도 있다. 태종 즉위 이후 태조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태상왕?상왕?왕이 공존한 경우였다. 그것도 8년간이나 왕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람이 셋이었다. 즉 태상왕 태조와 상왕 정종, 그리고 현직 왕인 태종 이렇게 세 명이 같이 살았다. 상왕이란 현재 왕 이외에 전 왕이 살아 있을 때 그 전왕을 부르던 호칭이다. 지금 왕보다 위에 있다는 이야기다.

나중에 상왕으로서 오롯이 권력을 행사한 왕은 태종이었다.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주고 난 이후에도 태종의 권력은 막강했다. 상왕 태종은 정치 세력의 견제, 제거와 친인척에 대한 통제 관리에 주력했다. 그뿐 아니다. 대마도 정벌이나 외교활동 등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상왕 태종이 권력을 행사한 기간은 세상을 뜰 때까지 대략 4년 정도였다.

상왕 태종이 위력을 과시한 예는 바로 세종의 처가를 박살 낸 사건이다. 심온은 세종의 장인이다. 그는 사위가 왕이 되자 영의정 자리에 올랐다. 마침 명나라 사은사로 떠나게 됐는데 연도에 그를 배웅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이에 심기가 불편해진 태종은 주변의 무고를 핑계로 심온에게 사약을 내려 처형하고 말았다. 아직 태종이 병권을 쥐고 있는 터라 세종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 심온의 딸인 소헌왕후는 세종의 비호와 태종 스스로 일을 매듭짓는 수순이어서 해를 당하지는 않았다.

요즘 일본에서는 아베 전총리가 상왕 노릇을 한다고 해서 논란이다. 총리 선출에 간여해 스가를 그 자리에 앉히더니 그 후임인 기시다 총리 임명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그는 자민당 내 최대파벌 수장이고 세습 정치인으로서 돈과 인맥을 무기로 일본 정계를 주물러왔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가 최근 ‘상왕’ 아베의 뜻을 거스르고 자기 색깔을 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아베가 반대하는 인물인 하야시를 외무상에 임명했다. 이에 아베가 격노했지만 상황이 바뀌지는 않았다.

상왕 정치는 혼란을 부르게 마련이다. 태양이 하나이듯 왕도 하나여야 하는데 상왕이 자꾸 개입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우리나라도 최근 민주당의 이해찬, 국민의 힘 김종인 두 원로가 상왕 소리를 듣고 있다. 이들은 모두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과연 이들의 역할이 어디까지이고 그 결과가 어찌 될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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