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부터 방영된 TV 드라마 ‘용의 눈물’은 전설의 대하사극으로 꼽힌다. 주연급 배우들의 열연과 탄탄한 대본, 장대한 스펙터클 등 어느 하나 흠잡을 곳 없는 명작이었다. 고려말 조선조초를 다룬 이 드라마는 34년에 걸쳐 명멸한 역사적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캐스팅도 화려했다. 태종 이방원 역을 연기한 유동근을 비롯해 태조 이성계 역의 김무생, 정도전 역의 김흥기 등이 나왔다, 흥행도 대성공이었다. 최고 시청률 49%, 평균 시청률은 20%였다. 제작비도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160억 원이었으며 방영 횟수도 154회나 됐다.

하지만 정통 대하사극의 전통은 근년에 들어 퇴조하는 모습이다. 더 이상 TV에서 대하사극을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다. 용의 눈물 이후 ‘태조 왕건’, ‘허준’, ‘여인 천하’ 등이 뒤를 이었지만 지난 2016년 ‘장영실’을 마지막으로 대하사극은 끊어지고 말았다.

사극의 인기가 사그라든 건 아니다. 보통 사극은 세 가지로 분류하는데 정통사극과 퓨전 사극, 장르 사극이 그것이다. 이중 정통사극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반면 퓨전 사극은 사실과 상상력을 적당히 버무린 것이고 장르 사극은 역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픽션이다. 2000년대 초반 정통사극의 맥이 끊긴 이후에도 퓨전과 장르 사극이 많이 방영됐다. 하지만 ‘용의 눈물’처럼 사극의 본령에 가까운 대하사극은 씨가 말랐다.

그 이유는 역시 제작비다. 정통사극은 소품 의상 그리고 출연비 등에 엄청난 돈이 든다. 하지만 수익구조가 허약하다. PPL은 아예 불가능하고 광고비를 벌어들이는 시청률 역시 손익분기점인 30% 달성은 극히 어렵다고 한다. 거기에 배우들 역시 힘든 촬영과정 등으로 인해 출연을 기피한다. 또 해외시장 진출도 어려워 수익성은 더욱 떨어지게 마련이다.

오는 12월 KBS는 모처럼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을 방영한다는 소식이다. 며칠 전 대본리딩 과정이 공개됐는데 주상욱과 김영철, 박진희, 예지원, 홍경인, 이광기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참여했다. 이 드라마는 ‘용의 눈물’과 같은 시대적 배경과 역사 인물을 다룬다. 제작진은 “역사적 인물인 이방원을 기존과는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본다는 점이 기존 사극과 차별점”이라고 밝혔다.

정통 대하사극은 방송사로서는 큰 모험이다.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들여 제작해놓고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낭패다. 그럼에도 재미는 물론 역사 지식과 교훈을 전수하는 정통사극의 필요성은 췌언을 요하지 않는다. 다른 채널에서도 ‘고구려’,‘조선왕비열전’ 등 대하사극을 준비 중이라고 하니 기대가 크다. K-사극이 지구촌을 풍미할 날이 올 것이라 점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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