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에 늘 붙어다니는 이미지는 서민음식이라는 것이다. 가난과 외로움, 슬픔이 배인 음식이 라면이다. 제대로 밥을 챙겨먹을 수 없는 딱한 처지의 사람들은 싸고 간편한 라면에 푹 빠졌다. 한 때 유행하던 ‘라보때’라는 말은 ‘라면으로 보통 때운다’의 줄임말이다. 오래 전 육상스타였던 임춘애 선수는 아시안 게임 3관왕에 오른 뒤 “라면만 먹고 뛰었다”고 말해 전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물론 나중에 사실과는 좀 거리가 있는 이야기로 밝혀졌지만.

그럴 만도 하다. 1963년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삼양라면의 값은 10원이었다. 당시 시내버스 요금과 같았다. 이 가격은 꾸준히 유지되다가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20원대로 올랐다. 이후로도 라면 값은 늘 낮은 수준이었다. 서민들이 한 끼 해결하는 데 부담이 없는 값이 라면의 최대 강점이었다. 지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내버스 요금은 1천300원인데 신라면 한 개 값은 800원대이니 상대적으로 많이 오른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라면이 가난을 상징하는 음식으로만 자리매김한 것은 아니다. 라면 애호는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적은 돈으로 한 끼 해결하는 음식도 되지만 훌륭한 요리 수준으로도 올라섰다. 우선 출시되는 라면의 종류가 엄청나게 많아졌다. 라면 회사들은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새 제품들을 만들어낸다. 매운맛이 기본이지만 구수하고 진한 맛이나 시원한 맛 등 사람들의 구미를 자극하는 다양한 맛이 나와 있다. 이쯤 되면 라면 맛의 유혹은 그 누구도 뿌리치기 어렵다. 라면을 이용한 갖가지 레시피도 인터넷에서 넘쳐난다. 라면이 하나의 문화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도 K-라면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우리나라 라면은 전 세계 130여개국에 수출된다. 작년 수출액은 6천730억원에 이른다. 또 고급 이미지가 있다. 가격도 꽤 비싸 헐값 라면의 4배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 국민 간식이자 주식이기도 한 라면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통계청이 밝힌 바로는 지난 10월 기준으로 라면 가격은 1년 새 11%가 뛰었다. 12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인상이다. 오뚜기가 값 인상을 선도하고 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농심과 삼양식품, 팔도 등이 뒤따랐다. 밀가루와 팜유 등 원재료 값이 상승했다는 게 이유다.

서민 음식 라면의 값이 오르는 것은 꽤 큰 충격이다. 끼니 잇기가 어려운 극빈층은 물론이려니와 싸고 간편하고 맛도 좋다고 인식하는 일반 시민들도 배신감을 가질법하다. 추억이 담긴 국민 소울 푸드라는 좋은 이미지에도 금이 갈 것 같다. 한 봉지에 2천200원짜리 라면도 등장했다고 하니 이제 라면에 대한 정의를 바꿀 때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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