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과 제8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형 의혹들과 도덕성 시비가 잇따르고 있는 데 대해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정책과 공약 경쟁은 멀어지고 각 진영은 상대후보 흠집 내기에 열중이다. 소위 유력후보들의 유세와 토론 등을 보면서 시대적 화두를 떠올려본다. 진실 규명과 정의가 가장 시급한 화두일 것이다. 공직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즉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는 뜻의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지 않은가? 

후백제 역사에서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바로 후백제를 세운 견훤대왕의 여민정개(與民正開)의 정신이다. 여민정개는 ‘백성과 더불어 세상을 바르게 열어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민(與民)을 먼저 해석하면 견훤대왕과 백성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공동주체라는 뜻이다. 전제군주의 일방적 독주가 아니라 백성과 더불어 함께 주권을 형성하고 나라를 세우겠다는 뜻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900년 광주선언을 하고 전주에 정도를 한 견훤대왕이 백성의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주에서 견훤대왕을 맞이하는 백성들은 열렬한 환호(迎勞)로 응답했다. 민주주의의 자기지배(demos+cratos)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정개(正開)이다. 먼저 정(正)인데 견훤대왕이 바르다고 본 것은 백제의 정통성 계승, 의자왕의 오래된 원한의 해소, 도탄에 빠진 민생의 구제, 현세의 복토인 미륵세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새 왕조의 창업, 삼한의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업 등을 수행하는 일이다. 개(開)는 새로운 왕조 창조의 개벽을 의미한다. 889년 견훤대왕은 거병을 하고 892년 광주에서 새로운 나라의 개국을 선언한다. 그 이후 900년 전주에서 전주선언을 하고 전주에 정도를 한다. 견훤대왕은 마한, 백제로 이어지는 역사의 정통성을 자신이 계승하고 의자왕의 오래된 원한을 풀겠다고 선언한다.  

후백제학회 회장인 송화섭 중앙대학교 교수는 여민정개를 3대 여민정신(與民精神), 즉 국민과 더불어 함께하는 3대 정신으로 체계를 세우고 있다. 첫째는 여시해행(與時偕行)으로 시대와 더불어 함께 행한다. 시대정신을 백성과 더불어 실천하겠다는 역사의식의 발로이자 진보정신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여심제세(與心濟世)로 군주와 백성이 한 마음으로 더불어 세상을 구제한다. 협업과 평등의 공화적 거버넌스의 실천이다. 셋째는 여민향리(與民向理)로 국민과 더불어 이상세계를 향한다. 후삼국 당시 백제인은 구세주인 미륵불이 도솔천 내원궁에서 내려와 용화회상의 이상세계를 건설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여민정개의 여민정신은 어려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900년 전주에 도읍을 정한 견훤대왕은 이 같은 국정철학을 천명하고, 901년부터  후백제가 망하는 936년까지 정개(正開)를 연호로 사용했다. 견훤대왕은 마한과 백제 계승 의식이 뚜렷했다. 마한과 백제의 중심지 금마 미륵사를 바라볼 수 있는 전주 인봉리 일대에 궁성을 짓고, 미륵도량의 이상세계를 건설하려고 했다. 견훤대왕은 평양성 문루에 화살을 걸어두고 말에게 대동강 물을 마시도록 하겠다며 삼한통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한 위대한 군주이다. 

모든 국민이 여민정개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를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과정에서 유효적절하게 활용하면 좋겠다. 역사의 유용성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담대한 용기의 실천이다. 우리는 몸(身)을 곧게 하고, 입(口)을 바르게 하며, 마음(意)을 훈훈하게 지니도록 해야 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정신을 견지하고 몸을 닦아온 후보와 더불어 새로운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게 국민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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