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도 방학이 필요해!
“맞아. 엄마에게도 방학이 필요했지.”
처음 ‘엄마의 방학’이라는 공동체 이름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었다. 동시에 아직 미혼인 나로서도 가슴이 뛰는 이름이기도 했고, 어딘지 모르게 한편으로 가슴이 먹먹한 이름이기도 했다. ‘엄마의 방학’은 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공동체다. 이름처럼 엄마들로 이뤄진 공동체며, 처음 학부모 책모임에서 시작했다. 4명의 작은 모임에서 시작해 현재는 15명이 넘었다. 참여하는 엄마들의 ‘느슨한 네트워크’를 지향하며 활동에 따라 회원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활동하는 편이다.

“처음에 이런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건 ‘대체 나 같은 엄마는 어디 없나’하는 질문에서였어요. 저는 가족들과 사이도 좋고, 아이들 키우는 것도 좋았지만 한편으로 저한테 결혼제도가 힘들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가정주부로 애들 키우는 게 뭐가 어렵냐, 다들 그렇게 산다고 했지만 저한테는 이 과정이 힘들었고, 그게 고민이었어요. 그런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죄책감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런 고민의 첫 탈출구가 됐던 게 ‘여행’이었어요. 처음에는 고민이 됐어요. 아이들만 돌보지 나가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여행이 사치는 아닌가? 그리고 여행을 가려면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겠더라고요. 하지만 아이 셋을 데리고 여행을, 그것도 배낭여행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막상 제가 아이들과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하니까 제 지인들조차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 저보다 저희 남편 밥을 더 걱정하더라고요. 하지만 다행히 남편이 응원과 지지를 보내줬고, 아이들과 처음으로 3개월간 배낭여행을 떠나게 됐어요. 아마도 그게 시작이었지 않나 싶어요.”

‘엄마의 방학’은 ‘엄마’라는 이름에 가려져 있던 스스로의 이름을 찾는 과정을 문화공동체 활동을 통해 진행해 왔다.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랴, 바쁜 일상에 지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엄마들의 다양한 활동은 때로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고, 전시회가 되고 워크숍이 됐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의 주 무대는 완주이지만 서울, 대전 등 전국의 엄마들과도 네트워크를 통해 지속적으로 활동을 공유하고 소통해오고 있다.

잊혀진 내 이름을 찾아서
“본격적으로 ‘엄마의 방학’활동을 시작했던 건 2018년도 였어요. 한창 활동에 고민이 깊던 시기였어요. 그때 문화기획, 활동기획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처음으로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의 ‘컬처메이커즈 스쿨’을 들었어요. 지금도 그 첫 시간이 잊혀지지 않아요. 교육을 신청한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는데, 제가 보기에 다들 어마 어마 하더라고요. 저도 제 소개를 해야 하는데, ‘그냥 아줌마입니다.’하고 멋쩍게 웃고 앉았던 기억이 나요. 그러면서 과연 내가 두 번째 시간에 올 수 있을까 막 심란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자기 소개가 끝나고 나서 ‘뭘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저한테 하는 거에요. 그런데 그때 저한테 그런 질문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어요. 그리고 이런 질문이 저한테 필요했던 거라고 생각했죠. 용기가 나더라고요. 그렇게 활동을 기획하고 시작하게 됐죠.”

엄마의 방학은 그 동안 엄마들이 마음을 공부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엄마의 마음 들여다보기’를 애니어그램을 통해 공부를 하기도 했는데, 시제 이런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이룬 회원이 나오기도 했다. 바로 지난해 ‘베르’라는 공간 연 소유진 회원이다. ‘베르’는 완주군 고산면에 있는 작은 책방이자 소유진회원이 직접 디자인한 문구류를 판매하기도 하는 ‘시골감성문구점’이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서 ‘엄마의 방학’의 다른 회원들도 용기를 얻었다.

“지난해에는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의 사업을 통해 ‘엄마의 신비한 책방’이라는 프로젝트를 베르와 함께 진행하기도 했어요. 이제는 엄마들의 마음을 공부하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사일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우리 지역에서 엄마들의 사회적인 ‘일’로 연결해보고 싶었어요. ‘엄마의 신비한 책방’은 이런 ‘연결’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어요. 그래서 그런 주제로 워크숍을 준비하기도 하고 엄마들이 북 큐레이터가 되어 다른 엄마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큐레이션 해 자신의 이름을 건 책장에 소개를 하고, 공유 매대를 통해서 엄마들이 만든 상품을 판매하기도 했어요. 그동안 취미에 머물러 있는 일을 사회적인 일로 연결하는 실험이었죠.”

봉동의 치앙마이를 꿈꾸다 ‘딩가딩가’
김지영씨가 최근 ‘사고’(?)를 쳤다. 만경강이 보이는 봉동의 아파트를 구해 작업실 겸 활동공간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 문을 연 지 보름이 되는 ‘딩가딩가’는 차분하고 감성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공간이다. 엄마들이 편하게 와서 만경강을 내려다 보거나 책을 보며 휴식을 할 수 도 있고 책상이 있는 방에서 일을 할 수 있다. 2019년부터 엄마들이 자신만의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책상’이라는 프로젝트가 실현된 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덜컥 저질러버릴 줄은 저도 몰랐어요. 불가능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뭔가 착착 풀리더라고요. 아마도 우주의 기운이었지 않았나 생각해요. (웃음) 지난해 시도했던 ‘좋아하는 것을 일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평소 로망이었던 작업실 겸 활동공간을 만들게 됐어요. 처음에 지원사업에도 도전해 봤는데, 심사위원들이 막상 엄마들한테 이런 별도의 공간이 왜 필요한지 공감을 못하시더라고요. 그리고 학교공간이나 도서관을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죠. 그때 깨달았어요. 아직도 이분들에게 엄마들은 그저 가사를 돌보고 집안에 있는 사람이구나. 하지만 엄마들도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그냥 제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겁도 났는데, 만들다 보니 신혼집 꾸밀 때보다 더 신나던데요? 오롯이 나의 취향을 담아 만드는 작업실이잖아요. 예산에 크게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그래서 ‘오늘의 집’을 보면서 만 개 정도 스크랩을 해놨던거 같아요. 진짜 엄청 신났죠. 사실 지난해 말부터 조금 마음이 무거울 때도 있었어요. 저희 활동을 응원해 주시는 만큼,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의무감에 시달렸던 것 같아요. 고맙게도 주변에서 조언을 주셨는데, 그 전까지는 저도 제가 얼마나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는지 몰랐던 것 같아요. 내려놓고 좀 더 자유롭게 활동해도 좋다고 하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는 안되더라고요. 근사해 보이는 게 아니라 이 활동을 왜 하고싶었는지, 공간을 왜 만들고 싶었는지에 더 집중할 수 있었어요. 재밌게 놀고 싶어서였죠. 그래서 너무 쉽게 이름이 나왔어요. ‘딩가딩가’. 그래서 이 공간을 꾸밀 때도 처음 여행을 갔었던 치앙마이를 컨셉으로 했어요. 봉동의 치앙마이를 만들어 보자, 그래서 저희끼리는 ‘봉동마이’라고도 불러요. 저는 ‘딩가딩가’도, ‘엄마의 방학’도 사람들이 에너지를 얻고 가는 공간이자 활동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렇듯이요.”

엄마들이 언제든 돌아와 활동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는 ‘딩가딩가’와 ‘엄마의 방학’. 그들의 바람처럼 엄마들의 문화적 실험과 도전이 자유롭고 즐겁게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오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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