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접어드니 짧은 장마 끝에 찾아온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35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아래에서 지난 5, 6월에 새가 가진 생태적 자리를 매미, 잠자리, 나비, 풀벌레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선선한 기운이 있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 무렵 가까운 산이나 공원에서 새를 찾아보기도 하지만 이전보다 잘 눈에 띄지 않습니다. 우연히 둥지를 발견하더라도 새끼가 없는 빈 둥지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금은 새끼들이 포식자를 피해 먹이를 찾고 사냥 연습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삶을 배우는 기간입니다.

그나마 시야가 트인 들판이나 호숫가는 나은 편인데 가끔 길 잃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철새’가 관찰이 되어 탐조인을 들뜨게 합니다. 한번은 익산 근처 논에서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서식하는 ‘적갈색 따오기’가 나타났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가 보았지만 헛된 걸음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10년 전 방송에 나왔던 이서면 들판 ‘뜸부기’도 찾아가 봤으나, 동네 어르신 말로는 최근 몇 년간 보지 못했다 합니다. 작년 이맘 때 혁신도시 기지제 연꽃 사이에서 놀던 ‘물꿩’은 다시 꿈꾸지 못할 행운이었나 여겨집니다.

그래서 7월에는 큰 욕심을 버리고 집에서 새에 관한 책을 읽고 유튜브 영상이나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것도 탐조의 한 방법입니다. Indoor birdwatching, 방구석 탐조라 이름 붙여 봅니다. 조류도감을 보면서 그 동안 봤던 새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기도 하고, 새의 생태에 관한 국내외 도서를 읽으면서 제반 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먼저 이해를 한 후에 새를 관찰하면 많은 것이 다르게 보입니다. ‘탁란’托卵이 이런 경우에 속합니다.

새가 동종同種의 다른 둥지에 알을 낳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탁란은 다른 종種의 둥지에 알을 낳는 것을 말합니다. '뻐꾸기'뿐 아니라 두견이, 벙어리뻐꾸기, 검은등뻐꾸기, 매사촌 등 두견이과 다른 새들도 탁란을 합니다. 영어로는 Brood Parasite라 하는 데 parasite는 기생, 기생충으로 번역이 되는 단어입니다. 삶의 한 기간을 완전히 다른 종에게 맡겨 생존하는 방식을 기생이라 하고 피해를 입는 상대방을 '숙주'宿主라고 합니다. 탁란이란 말을 들을 때는 저절로 나쁜 이미지를 가지게 되지만 그 과정을 이해하게 되면 오히려 작은 연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탁란의 대표적인 예로 잘 알려진 '뻐꾸기'는 다른 여름철새보다 조금 늦은 5월 말에서 6월 초에 찾아옵니다. 둥지를 지을 필요가 없으니 굳이 일찍 올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오는 '뻐꾸기는 동아프리카를 출발해서 인도양을 건너고 인도, 미안마, 중국을 거쳐 이곳까지 1만 킬로미터를 날아옵니다. 이렇게 긴 여정을 거쳐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온 '뻐꾸기'는 쉴 틈도 없이 알을 낳을 '숙주' 둥지를 찾기 시작합니다. 탁란에 희생되는 '숙주'들을 살펴보면, 개개비, 붉은머리 오목눈이(뱁새), 딱새, 휘파람새, 산솔새 등 작은 새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뻐꾸기'가 찾는 ‘'숙주'’는 다름 아닌 작년 온갖 수고를 다해 자기를 키워준 바로 그 새입니다.

염치없는 이중배신이라고 하겠습니다. '숙주'마다 알을 낳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많은 후보지를 골라 놓아야 하는데, 한두 개의 알을 낳아 놓은 둥지가 제일 적당한 후보지입니다. 하지만 '숙주'의 둥지에 아무 때나 무턱대고 알을 낳을 수는 없습니다. '숙주'도 '뻐꾸기' 탁란에 대한 대비를 하여 방어를 하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둥지를 고른 다음 '숙주'의 경계심이 적은 정오 즈음, 암수가 함께 둥지 근처로 가깝게 접근하여 양동작전을 펼칩니다. 먼저 수컷이 큰 울음소리로 자극하면 '숙주'들이 수컷 '뻐꾸기'를 쫓아내려 둥지를 벗어나는데 그 짧은 순간 암컷이 알을 낳습니다. 불과 10초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 때, 둥지 안 알의 숫자를 맞추기 위해 '숙주' 알 하나를 입에 물고 나옵니다. '뻐꾸기'는 얼핏보아 ‘새매’와 비슷하기 때문에 '숙주'들이 속아서 두려움에 둥지를 벗어나기를 기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뻐꾸기' 알은 크기를 제외하고는 '숙주' 알과 모습이 유사하여 '숙주'는 자신의 알로 알고 품습니다. '뻐꾸기'는 보통 20-25개의 알을 낳습니다. 하루 하나의 알을 낳기 때문에 한 달 가까운 기간을 계속해서 탁란합니다. 

다른 알보다 먼저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둥지를 독차지하기 위해 나머지 알 혹은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냅니다. 홀로 남은 '뻐꾸기' 새끼는 많은 먹이가 필요하기 때문에  새끼 여러 마리가 내는 듯 한 크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로 '숙주' 어미를 속입니다. 보름 남짓 '숙주' 어미가 부지런히 먹이를 먹여 키운 '뻐꾸기' 새끼는 '숙주'어미보다 더 크게 자란 채 둥지를 벗어나며 이 후에도 한동안 '숙주' 어미가 물어주는 먹이에 의존합니다. 이 기간 동안  새끼는 '숙주'의 모습을 머릿속에 각인해 둡니다. 내년에 다시 찾기 위해서 입니다. '뻐꾸기'가 완전히 독립한 후에는 부모 '뻐꾸기'를 찾아 못 다한 정을 서로 나눌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뻐꾸기 부모는 알을 낳은 후 미련 없이 먼저 아프리카로 돌아가 버립니다. 무책임하고 매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혼자 남게 된 '뻐꾸기' 새끼는 한 달 정도 더 몸집을 키운 후 오로지 본능에 의지한 채 동아프리카로 날아갑니다. 그 곳에서 겨울을 나고 봄철 다시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것이 한 주기의 '뻐꾸기' 생애입니다.

'숙주' 입장에서 탁란은 어떨까요? 다른 종의 새끼를 키우기 원하는 새는 없습니다. 탁란을 빼앗고 지켜려는 진화적 군비 경쟁에 비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탁란을 피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알의 색을 바꾸는 것입니다. 많은 뱁새가 푸른색 알을 낳지만 탁란을 피하기 위해 흰색 알을 낳는 뱁새도 있습니다. 둥지에서 푸른색 '뻐꾸기' 알을 발견한 뱁새는 '뻐꾸기' 알을 쪼아버리고 그 둥지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탁란을 피합니다. 알의 크기를 더 작게 줄이는 쪽을 선택한 새도 있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뻐꾸기' 새끼가 먹을 수 없는 먹이로 새끼를 키우는 방법으로 탁란을 피하기도 합니다. 땅에 떨어진 자기 새끼를 보면 탁란을 알아차리고 둥지에 남은 '뻐꾸기' 새끼를 돌보지 않는 새도 있습니다.

탁란은 사람이 보기에는 매정하고 괴기하게 비치는 삶의 방식이지만 그 과정 속에는 최선을 다해 자기 유전자를 후세에 전하기 위한 지극히 힘든 노력이 숨어 있습니다. 요즘 새벽 멀리서 아련히 들리는 '뻐꾸기' 울음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뻐꾸기'는 친부모 없이 수양부모 아래 자라나서 곧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 먼 아프리카까지 가야 합니다. 누구 도움도 없이 죽음을 불사하며 홀로 날아가야 할 새끼 '뻐꾸기' 처지를 생각한다면 이제 그 울음소리가 서럽고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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