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근 전 전주교육장

지난주 말 내장사 용굴 길을 걸었다. 왜란의 참화를 피해 조선왕조실록을 옮겨 놓은 곳이어서 실록길이라 부른다.
그때는 나무꾼조차 피했을 험지다. 실록이 국보가 되고 유네스코 기록유산의 유명세를 탄 탓에 이 길도 이제는 사람이 무시로 다니는 길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며 걸어야 할 만큼 좁은 길이다. 길이 좁으니 자연이 더 가까이 있다.

이 험지까지 그 많은 괘를 들고 올라온 유생과 민초들의 무거움만큼 마음이 무거웠다. 며칠 전 전북환경연합이 주관한 <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그 너머> 작품전에 다녀온 탓이기도 했고 부쩍 체감되는 기후위기와 생태환경의 심각성 탓이다. 크리스 조던이 감독한 다큐, ‘알바트로스’의 순수한 눈을 닮은 우리 아이들에게 그 영화의 종말 같은 비극을 물려주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코로나로 기후위기와 생태환경 문제가 바짝 다가왔다. 환경비상시국이다. 더 분명한 것은 이 위기를 자초한 것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지구 나이 45억년 동안 살아온 생물체 중에서 겨우 30만년 정도의 나이를 가진 늦둥이 생명체가 인간이다. 이 늦둥이가 편하게 먹고 살기 위해서 저지른 환경파괴가 모든 생명체의 재앙이 되어버렸다. 인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지구를 뜨겁게 만들고 그 탓에 생기는 홍수와 가뭄, 산불에 멸종되는 것은 죄 없는 타 생명체들이다. 알바트로스의 내장에서도, 1만 미터 바다 속 깊은 심연에서도 플라스틱이 나온다. 이 위기는 지속적으로 심화될 것이다. 지속될 재앙 앞에 지속가능한 지구도, 인류의 미래도 없다.

-'학습(learning)'이란 새로운 지식과 역량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교육(education)이란’ 학습자들이 알고, 이해하고, 실천하도록 도와주는 체계적인 학습프로그램이다. ‘훈련(training)은’ 교육의 한 종류로서 특정한 기술의 습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켄 로빈슨 글 인용) 그리고 이것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학교이다.
필자는 환경교육과 관련해서는 학교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환경에 대한 학습과 실천은 학습자의 취사 선택 문제가 아닌 필수선택의 문제다. 모두가 참여한다는 전제로 체계화해야 할 학습 프로그램이며 환경에 대한 이해와 실천 역량 습득에 초점을 맞추어 훈련되어야 한다. 학습자는 어린이와 청소년 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다.

현실은 안일하다. 비상시기라는 위기감이 없다. ‘고기 안 먹는 날’을 실천하는 것은 개인의 이색 취향이다. 페트병의 라벨지를 떼어내는 수고는 일부 엄마들의 수고에 그치고 만다. 북극곰의 사투나 그물에 걸린 바다 생물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일 뿐이다. 이유가 있다.

전국 어느 곳이나 대동소이하겠지만 전라북도 중고교 중에서 환경교과 선택은 중학교 209교 중 15교, 고등학교 133교 중 21교이며 환경교육을 전공한 교사가 단 한 명도 없다. 부전공 교사 1명이 전부이다.
기본공통과목이 더 중요했다. 비교과 과목의 필요만큼 환경은 중요하지 않았다.

임계점은 이미 지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지체없이 실행해야 한다.  환경시민단체나 대학 등과 연계한 프로젝트 실행, 협력 수업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열고 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생태환경 교육이 실천되어야 한다. 기본공통과목과 맞먹는 환경교과의 필수선택이 필요하다. 담당할 교사의 양성이 시급하다. 직무연수의 시간 확대와 대상자 확대, 부전공 연수를 통한 전문교사 양성, 마을교육과의 연계도 시의적절하다. 교사들부터 환경운동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도 중요한 방안이다.

인간만의 지구가 아니라 모든 생물계의 지구이다. 지구를 황폐화시킨 단 하나의 생물인 인간이 지구를 복원한 유일한 생물체이다. 위기다. 위기에 맞게 대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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