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열녀(烈女) 전주 이 씨에 대한 조정(정부)의 포장 내용이 뒤늦게 후손에 의해 알려져 화제를 낳고 있다.

지난 5월은 가정의 달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등이 있었다.

사선문화제 양영두 위원장은 5대 조모님인 열녀 전주 이씨 효열비각 현판 봉헌을 계기로 1869년 당시 하북면(下北面) 지금의 임실군 관촌면, 진안군 성수면, 완주군 상관면 일대 거주하던 최주하 등 33인이 성주(군수)에게 청원(상서)을 내고 하회촌(회봉리) 거주 전주 이 씨를 포상해 달라고 청원한다.

이에 양 위원장은 열녀 전주 이씨에 관련해 표창 상소해주신 후손과 임실읍 유림 오흥수 선생 등 후손들을 찾아 전라관찰사와 조정(중앙정부)에 포상 상소를 해주신데 대한 감사의 보은을 표하기 위해 후손 찾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당시 상서 기록에 따르면 부인 이 씨(당시69세)는 남원 양공재도의 아내인데 32세 때에 딸 셋이 있고 임신상태였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36세), 다행히 유복자가 아들(하권)로 이어져 대(代)를 잇게 되고, 시어머니를 극진히 섬기고 봉양하고 자식 양육을 엄하게 하여 훌륭하게 성장시켰다.

남편이 세상을 뜨자, 고기와 양념된 음식을 먹지 않고 3년상을 치르고, 삯바느질, 방앗품등으로 생계가 궁핍하지 않게 가정을 이끌고, 선대가 남원에서 정유재란(1599년)에 전재를 입어 임실로 온 집안 이어, 문적과 위토 선산 등 남이 가로챈 것을 남원부에 달려가서 소(소송)를 제기해서 기어코 다시 찾아내는 등 옛적 열녀(烈女), 효부(孝婦) 보다 더 훌륭하다고 칭송하며, 양 씨 가문이 8代를 독자로 내려왔는데 그 가운데 집안의 명예를 지켰다고 밝혔다.

이 씨 부인은 1800년생으로 전주 李 씨 왕족인 회안대군 12세 손인 장의의 따님이며, 하권의 아버지 휘재도는 남원인 병부공 후예로서 홍문관 대제학, 한림학사인 준(俊)의 20 세손으로 5대에 걸친 진사 등 남원 석유(碩儒)이며 전라도인의 명망 있는 집안이라고 밝혔다.

양 씨 가문은 1599년 임진왜란 정유년에 남원성이 불타 전재를 입고 임실군 관촌면 회봉촌으로 이거 되었다.

현판은 계남 송기상 선생이 쓰고, 무형문화재인 명장 김종연 선생이 서각 했다.

효열 비각은 후손인 고양창석 선생이 생존 시 세워졌고 단청은 지난 2010년에 완성되었고 비각 현판 봉헌은 열녀 전주李氏 5세 손 인 양영두(사선문화제 위원장)에 의해 봉행되었다.

양영두 위원장은 “전주 이氏 부인은 1800년생으로 전주 李 씨 왕족인 회안대군 12세 손인 장의의 따님이며, 하권의 아버지 휘재도는 남원인 병부공 후예”라며 “홍문관 대제학, 한림학사인 준(俊)의 20세손으로 5대에 걸친 진사 등 남원 석유(碩儒)이며 전라도인의 명망 있는 집안”이라고 말했다.

현판은 양영두 위원장은 지난 1986년 사선문화제를 제전위원 100명과 창립하고, 35년간 이어왔다. 사선녀 선발, 소충.사선 문화상시상, 호남좌도농악의 맥을 잇는 전국 농악경연대회, 신위제 행사 등 전북의 대표적 향토문화제로서 위상을 지켜오고 있다. 또한 국가보훈처가 민주유공자로 인정한 민주인사로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헌신해 온 인물이다. /임실=임은두기자.led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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