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당시 호남 의병의 상징이었던 임실군 오수면 구로정이 복원되면서 현판식을 가졌다.

군에 따르면 구로회계(회장 한기수)는 오수면 둔덕리 산47번지 일원에서 구로정(九老亭) 현판식을 진행하였다.

1663년 최초 조성된 구로정은 수차례 중건을 거치다 지난 1954년에 중건되었으나, 낡고 허물어지자 안타까움이 컸다.

그러던 중 전라북도의 지원을 받은 ‘오수 둔데기마을 옛길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구로정 복원이 추진되면서, 둔덕리 일대 주민들과 구로회 회원들의 소망이 결실을 이루게 됐다.

군은 삼계석문과 오수천 산책로를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한 결과 구로정은 산뜻한 모습으로 탈바꿈됐다.

구로정은 1663년 즈음 둔덕리 일원 아홉 노인이 주축이 되어 구성한 구로회(九老會)에 의해서 세워졌다.

주변에는 구로정을 비롯하여 단구대(丹丘臺), 삼계석문(三磎石門) 등 이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특히 구로정 아래로 흐르는 섬진강 오수천은 월평천과 율천을 아울러 삼계(三溪)라 지칭하였던 것인데, 하얀 모래와 빼어난 경치 때문에 오수면 일대에서 화전놀이, 천렵 등을 하던 곳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구로정은 단구대라고 하는 바위 위에 세워져 있는데, 이 단구대는 색깔이 자색이어서 자단(紫丹)이라고도 불린다.

단구대의 한쪽은 붉은 벽처럼 세워져 높이가 수척이나 되며, 이 바위 위에 높은 대가 형성되어 있고, 이곳에 구로정을 세운 것이다.

단구대에는 구로일소(九老一小), 즉 장제, 한빈, 하득도, 한유, 장서, 장선, 하만리, 최휘지, 최유지와 젊은이 이문규 등 1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들은 대부분 1636년 병자호란 당시 구국근왕병을 자처하며 호남지역에서 출발하였던 호남 의병이거나 의병의 아들, 동생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남병자창의록에는 임실 의병으로 이두연, 조평 등 11명, 남원 의병으로는 황정직, 한경생 등 87명의 참전 의병들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다.

특히 구로회에서 조성한 삼계석문은 구로정에서 7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약 8M 높이의 바위에 서까래 같은 큰 글씨로‘三磎石門’의 네 글자를 세로로 새긴 것이다.

삼계석문의 서체 필획이 경남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비와 흡사하며, 고운 최치원의 글씨라 전해지고 있는 쌍계사 입구의‘雙磎石門(쌍계석문)’의 글씨를 모작하여 최유지의 아들인 최기옹이 쓴 글씨로 알려져 있다.

최치원은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하고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 때 격문을 쓴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는 신라에 돌아와서 기울어져 가는 신라를 바라보면서도 신라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였다.

구로회에서 조성한‘삼계석문’네 글자는 그대로 최치원의 충(忠)과 대비시킨 것이다.

현판식을 준비한 구로회 한남연 총무는“허물어져 가는 구로정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움이 컸다”며“후손된 입장으로 구로정 현판을 다시 걸 수 있게 되어 감개무량하다”고 전했다.

심 민 군수는 “오수둔데기 마을 옛길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구로정 복원사업이 성공리에 추진돼 뜻깊다”며“구로정 일대에 흐르는 병자호란 당시 창의하였던 선대 어르신들의 정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임실=임은두기자.led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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