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도 이팝나무와 아카시 하얀 꽃 그리고 신록이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철새들이 찾아옵니다. 이 시기에는 많은 연구자나 탐조인들이 새를 보러 섬으로 갑니다. 섬에는 긴 여정을 마치고 갓 도착한 철새들이 해안가에 무리를 지어 있고, 육지 숲이라면 나뭇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새들도 섬에서는 몸을 숨길만한 곳이 적어서 관찰하기 좋습니다. 철새 연구센터가 있는 어청도와 군산 앞바다 유부도에 가면 하루에도 수십 종의 철새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섬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새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완주군 이서면 앵곡(鶯谷)마을은 이름 그대로 꾀꼬리골인 데 해마다 꾀꼬리가 찾아오는 곳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곳에서는 꾀꼬리 노래가 들려옵니다. 노란색 몸에 머리만 검은 꾀꼬리는 아름답고 다채로운 노래로 예로부터 유명합니다. 꾀꼬리 보다 먼저 도착한 흰배지빠귀, 되지빠귀 등을 선두로 흰눈썹황금새, 휘파람새, 파랑새, 소쩍새 그리고 깊은 밤 소리 없이 날아서 먹이를 낚아채는 솔부엉이도 앵곡마을 주변 산에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완주군 고산 휴양림도 새를 관찰하기 좋은 곳입니다. 쇠박새 한 쌍이 나무 가지 사이 동그란 틈에 여러 마리 새끼를 낳아 열심히 먹이를 둥지로 실어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가까운 산등성이에서 검은등뻐꾸기 노래도 들을 수 있습니다. 검은등뻐꾸기 우는 소리는 아주 특이한 데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습니다. 4음절 민요 ‘옹헤야'에 가사만 바꾸어서 ‘시냇가에, 동네꼬마, 홀딱벗고, 목욕한다, 어쩔시구, 잘도논다' 식으로 흥겨운 노래 소리를 냅니다. 전주수목원에서도 멀리 동남아시아에서 날아와 중국 동북부로 가기 전에 잠시 쉬어가는 ’나그네새‘인 울새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흰눈썹붉은배지빠귀도 만날 수 있고, 오색딱따구리가 새끼 키우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5월은 부쩍 자란 버린 풀과 무성해진 나뭇가지 사이에 새들이 숨어있어 관찰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하지만 새들에게는 짙은 초록 잎들이 더 할 나위없는 엄폐물이 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짝을 찾고, 알을 낳기 위한 둥지를 만드는 일에 힘을 쏟는 시기입니다. 짝짓기 시기는 종(種)이나 서식지에 따라 다르지만 초목이 무성해지는 봄을 선호하는 이유는 먹잇감이 풍부한 여름에 새끼들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새끼들을 빠르게 성장시키기 위해서 벌레를 주로 먹여야 하기 때문에 여름이 오기 전 미리 알을 품어야 합니다. 한편 벌레가 아닌 다른 먹이를 주로 먹는 새들은 여름 혹은 늦여름에 짝짓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탁란을 하는 뻐꾸기는 뱁새 등이 알을 낳는 시기를 기다려야하기 때문에 다른 새보다 조금 늦게 짝짓기를 합니다.

몇몇 도요새류가 짝을 찾는 과정은 특히 재미있습니다. 이들은 암컷들이 지켜보는 공개적인 무대에서 여러 수컷들이 동시에 자신들이 그동안 가꾼 멋진 깃털을 펼치며 현란한 춤을 추기도 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릅니다. 예리한 눈을 가진 암컷 관객은 이들을 유심히 지켜보며 그 중 제일 화려한 깃털을 가지고 멋진 음성으로 노래하고 멋진 춤을 춘 수컷 하나를 점찍어 놓습니다. 시합이 끝나면 모든 암컷이 그에게만 접근합니다. 이리하여 이 공개 경쟁시합에서 우승한 한 마리 수컷은 많은 암컷과 짝짓기를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짝을 선택하는 과정은 복잡하고 현란한 데 비해, 교미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짧은 입맞춤 정도로 싱겁게 끝나는 경우가 많은 데 한 번의 교미가 한 개의 알로 이어지지 않고 수정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여러 번 교미를 하게 되고 암컷은 수컷의 정자를 며칠 째 보관하였다가 사용하기도 합니다. 어떤 암컷은 원하지 않는 수컷의 정자를 내다버리기도 하고 또 수컷은 교미하는 동안 암컷이 저장해 놓은 다른 수컷의 정자를 버리도록 자극합니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한 수컷 혹은 암컷들의 노력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의 암컷이 여러 수컷을 혹은 하나의 수컷이 여러 암컷을 짝으로 삼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새들에게도 ‘일부일처’가 일반적 현상입니다. 특히 고니는 일생동안 한 배우자만 선택해서 살아가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 혼례식 때 기러기 혹은 원앙을 새긴 나무 조각을 올려놓은 이유도 이런 새들처럼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수필집인 ‘성호사설'에는 과부집에 살던 제비 부부 중 수컷을 고양이가 물어 죽였지만 이후 10년 간 암컷 제비는 강남을 오고 가면서도 그 집을 찾아와 홀로만 지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동물기, 김홍식 저). 이런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이 전해 내려오는 데 정말 새들은 정절을 지키며 한 배우자만 바라보며 살아갈까요?

최근 새들의 행동양식에 대한 연구가 전보다 많아지면서 이런 통념에 대한 반대 증거들이 많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 중 놀랄만한 사실은 ‘일부일처’를 유지하는 새들의 알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90% 이상의 둥지에서 다른 수컷의 알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관찰 가능한 모든 새의 둥지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새들에게 외도란 일상적인 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수컷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알락딱새 수컷 경우는 약 3키로 미터 떨어진 곳에 두 번째 둥지를 만들어 놓았다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런 외도는 유전적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의 시각으로 부도덕한 행위라고 판단할 일은 아닙니다.

5월은 새들이 고향을 찾아 돌아와 새끼를 낳고 키우는 달입니다. 철새들은 정확하게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다시 찾아옵니다. 작년에 본 물총새 둥지 주변에 하얀 배설물이 다시 보이고 근처에서 물총새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이렇게 작은 생명에게도 ‘고향’의 의미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어릴 적 살던 마을 골목길이 사라지고 당산나무가 베어지고 부엉이 울던 바위가 도시의 정원석으로 실려나간 탓에 변해버린 고향을 더 이상 찾아가기 어렵듯 우리가 베어낸 나무 한 그루, 메워버린 작은 실개천, 시멘트로 발라버린 절개지, 갈아버린 논 한 마지기는 새들에게 큰 상실이 될 것입니다. 가능한 있는 그대로 자연을 보존하면서 새들과 공존하는 법을 생각하면서 계절의 여왕 5월을 보냈으면 합니다.
/글 사진 김윤성 시민기자(전북산업보건협회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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