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따라 온 흰배지빠귀, 한밤중 은밀히 번식지 찾아들다

전북의 철새 <1> 전라일보l승인2021.04.19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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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어 남쪽 섬진강변 노란 산수유, 하얀 매화, 그리고 벚꽃 꽃망울이 연이어 터지고 산으로 진달래가 연분홍 물감처럼 번져 갈 때, 이 꽃길과 꽃내음을 따라 멀리 동남아시아, 호주 등지에서 겨울을 나던 여름 철새들이 한밤 중 은밀히  번식지를 찾아 돌아옵니다. 가까운 완주 이서면 야산엔 호랑지빠귀, 흰배지빠귀 선발대가 도착했으며, 익산 춘포, 옥구 회현 들판 위로 날렵하게 비행하는 제비를 볼 수 있습니다. 혁신도시 기지제에는 발구지가 잠시 한 숨 돌리며 쉬었다가 시베리아로 다시 떠났으며, 서해안 유부도 너른 갯벌엔 뉴질랜드에서 날아온  큰뒷부리도요새들이 긴 여정 끝에 지친 날개를 추스르며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수 주간 머물며 힘과 먹이를 보충하고  다시 번식지인 알래스카로 이동하여 여름을 나며 새끼를 낳을 것입니다.

4월에는 텃새들도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만경강변에는 까치가  버드나무 연둣빛 가지 사이 곳곳에 둥지를 짓고, 딱새, 참새,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는 짝을 쫓아 억새풀 사이를 부지런히 돌아다닙니다. 수꿩이 풀밭 사이에서 내지르는 소리가 우렁차서 강변 산책하는 이들을 간간히 놀라게 합니다.  전주 월드컵 경기장 메타세콰이어 나무 꼭대기에선 해 뜨기 전부터 박새, 방울새가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고 오색딱따구리가 날카로운 부리로 나무줄기를 파내며 둥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봄은 모든 새들이 짝을 찾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다 쏟아 붓는 때입니다. 다른 동물처럼 새도  수컷이 더 아름답고 화려한 깃털을 가지고 있으며 노랫소리도 더욱 현란합니다. 화려한 깃털은 경쟁하는 다른 수컷을 주눅 들게 하고 건강한 상대를 찾는 암컷에게 매혹적인 자랑거리가 됩니다. 암컷은 사람 시각으로는 볼 수 없는 깃털 색깔이 가진 미세한 차이를 인식하는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뭇가지에 앉아 부지런히 깃털을 고르고 있는 작고 귀여운 박새, 강변 자갈밭에서 꼬리를 쫙 펼치며 멋진 무늬를 자랑하는 꼬마물떼새, 일부러 그러는 듯 느릿느릿 걸어가며 화려한 무늬를 뽐내는 꿩 수컷을 보고 있자면, 멋진 몸매를 겨루는 시합에 대비하는 선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한편, 화려한 깃털보다는 아름다운 노래로 상대를 유혹하는 새들도 있습니다. Songbird라 불리는 명금류인 참새목 새들이 이런 부류인데 지구상 존재하는 새의 종種  절반 정도가 이에 속합니다. 이들이 가진 짝짓기 전략은 많은 소절을 가진 노래를 다채로운 음정으로 크게 불러 자신의 존재를 상대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레퍼토리가 다양하지 않거나 목소리가 작고 음정이 불안정한 경우에는 상대에게 큰 점수를 얻지 못합니다. 암컷은 수컷들이 부르는 노래 속에서 수컷의 건강상태, 나이, 출신 지역, 노래하는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명금류들이 조용한 아침 나뭇가지 끝에 올라가 소리 높여 노래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키 큰 나무를 차지하기 위해 수컷들끼리 경쟁도 불사합니다. 높은 곳을 찾아 한층 더 나아간 새도 있습니다. 종다리는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높은 하늘 한 가운데서 노래를 부릅니다. 사람이 전력으로 뛰어가면서 노래하는 것을 연상하면 하늘 높은 곳에서  날갯짓을 멈추지 않고 노래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맹금류의 먹잇감이 될 위험성이 더 높아짐에도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의 용감함과 건강함을 과시하기 위한 것 입니다.

그러면 새는 어떻게 노래를 배우는 걸까요? 어린 아이가 부모와 형제에게 말을 배우는 것처럼 어린 새들도 노래 부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린 새들은 부모에게 어느 정도 노래를 익힌 후 둥지를 떠나 자신이 앞으로 평생 머무르고 성장할 공간을 찾아갑니다. 그 곳에서 다른 동갑내기들과 함께 이미 정착해있는 어른 새들부터 본격적으로 노래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훌륭한 스승이 부르는 노래를 곁에서 듣고 그대로 외웁니다. 나뭇가지에 혼자 앉아서 조용히 눈을 감고 고개는 살짝 한쪽으로 기울인 채로 혼잣말처럼 작은 소리로 들릴 듯 말듯 외운 내용을 읊조립니다. 그 후 어린 새는 암기한 노래를 자신 만의 방식으로 소리를 내어 노래하기 시작하는 데 처음엔 음정이 불안정하고 내용을 빼먹기도 하고 박자가 틀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백 번 반복하고 수정하면서 마침내 자신의 종(種) 고유의 노래이며 대대로 내려오는 조상의 노래를 이제 자신의 노래로 완성합니다. 노래 하나를 완벽하게 습득한 후에는 또 다른 노래를 익혀야 합니다. 노래 종류가 2,000개에 달하는 새도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수행한 한 실험에서 수면을 취하는 어린 새의 뇌파가  낮에 노래를 부를 때의 것과 동일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노래를 배우는 어린 새는 꿈속에서도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해 호주 전역에 발생한 산불로 이전부터 개체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던 꿀빨이새에게 고유의 노래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어른 새들이 화재로 많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노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제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수컷을 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외면하는 암컷으로 인해 급박한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새들이 부르는 노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4월에 듣는 새들의 노래에는 단지 짝을 찾기 위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쟁상대를 몰아내려는 ‘함성’ 노래, 먹이 위치를 서로 공유하는 ‘공동체’ 노래, 부모에게 먹이를 달라는 ‘어리광’ 노래, 위험을 전파하는 ‘경고’ 노래, 다른 새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한꺼번에 달려가며 지르는 ‘선동’ 노래, 비행 중 뒤쳐지는 동료를 격려하는 ‘응원’ 노래 등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새들에게 노래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입니다.

1억3천년만 전 꽃보다 먼저 이 땅에 태어났고, 원숭이가 나무에서 내려오고, 사람이 아프리카를 벗어나는 모습을 지켜 본 새들의 기나 긴 역사가 노래 하나, 깃털 하나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탐조 장비를 마련한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포유류의 두 배가 넘는 10,000 종種 이상인 새들의 시각에서 보면 어쩌면 아직도 지구는 그들의 땅, 공룡의 땅 일지도 모릅니다. 다음 연재에도 동반자의 시선으로 새를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풀어보겠습니다.
/글·사진=김윤성 시민기자(전북산업보건협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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