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

오피니언l승인2021.04.14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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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두 달 전 어느 오후, 민원실이 고함으로 시끄러웠다. 민원인이 지팡이까지 휘저으며 직원을 위협하고 있었다. 화가 단단히 났던 모양이다. 다른 민원인의 상담을 방해하는 것도 문제지만, 직원의 안전이 걱정될 정도였다. 민원의 불만 이유를 듣기 위해 나는 민원인을 사무실 안쪽으로 모셨다.
 자녀 때문이었다. 자녀가 장애가 있어 우리 공단에 장애등록심사를 요청했는데, 장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정이 나와서 항의차 방문한 것이었다. 민원인은 80대 중반이었다. 걸음걸이까지 불편해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민원인에게 차 한잔을 권했다.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50대인 자녀에 대해 말씀을 시작했다. 자녀는 어릴 때부터 뇌전증 장애가 있었다고 한다. 말씀하시다가 스스로 감정이 격해 눈물을 보였다. 팔순 노인의 눈물이 안타까웠다. 그 모습에서 인터넷에서 보았던 가시고기의 부성애가 떠올랐다.

가시고기는 우리나라 민물고기인데, 등 지느러미가 가시처럼 뾰족한 침이 있다고 해서 가시고기라고 불린다. 이 물고기는 특이하게도 부성애가 강하다.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면, 수컷 홀로 부화시키고 새끼를 기른다.

민원인에게 장애 자녀는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장애가 당신 탓이라 생각에 늘 미안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민원인은 오래전에 배우자와 사별하고 홀로 자녀를 부양하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 정도만이라도 건강이 된다면 좋으련만,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한다. 요즘 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만큼 건강이 나빠지고 있는데, 언제 어떻게 될지 자신도 알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죽는 것은 괜찮은데, 자신이 없어지고 나면 홀로서기를 할 수 없는 자녀 걱정으로 눈을 감을 수가 없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래서 민원인이 생각한 것이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장애가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자녀의 장애인등록을 원했던 것이다.

상담한 후 2달쯤 지난 오늘, 민원인이 다시 찾아왔다. 출근시간 전에 음료수 한 박스을 들고 민원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함을 지르며 지팡이를 휘두르시던 억센 노인이 아니라 점잖은 보통의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담당자에게 인사를 하고 난 뒤 나를 찾았다. 고맙다고 하면서 음료수 한 박스를 내 자리 아래 두었다.

항의를 심하게 한 날, 민원인과 상담을 했었다. 나는 5년 동안 장애등록심사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다. 선천성 뇌전증은 경험상 지적장애와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 민원인에게 지적장애 신청을 안내했다. 상담하는 과정에서 학력을 묻고 인지 정도를 확인하니 내 예상이 맞았다. 그 후 민원인은 지적장애 서류를 제출하여 심사를 받았는데, 뇌전증보다 더 심한 장애로 판정받았다. 게다가 재심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영구장애였다. 두 달 전 항의했던 것이 미안한지 오늘 음료수를 들고 찾아온 것이다.

수정란이 부화하고 새끼가 독립할 때까지 둥지에 혼자 사는 가시고기의 심정은 어떨까. 오직 한 가지밖에 없었을 것이다. 알에서 깨어나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살아갈 때까지 보호해 주는 것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새끼 가시고기가 스스로 홀로서기를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몸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민원인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순의 노구를 끌고 지팡이를 휘두르는 모습에서 가시고기 둥지의 침입자를 막는 모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수컷 가시고기는 새끼가 홀로서기를 할 때쯤 숨을 거둔다. 알을 부화시키고 새끼를 보호하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으니 몸이 지탱할 리 없다. 수컷 가시고기가 새끼를 돌보는 것은 타고난 습성이고 자연의 생리일 수도 있지만, 새끼를 위해 목숨을 다하는 모습에 숭고함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진다.

민원인은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일어섰다. 음료수를 다시 건네주었다. 겸연쩍은 듯 주저했다. 마음만 받겠다고 하며 설득하니 그제야 받았다. 민원인은 한 손에 음료수를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뒤뚱거리며 사무실을 걸어 나갔다. 직원 몇 명이 함께 지켜보았다. 든든하고 믿음이 가는 가시고기의 뒷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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