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한국 사교육 일번지’라고 검색하면 서울 대치동과 목동, 중계동 등 대형종합 학원에서부터 중소형 학원, 교습소 등이 밀집된 소위 ‘대한민국 사교육 특구’라고 불리는 지역이 나온다. 조선 시대에도 사립 교육기관이 있었는데 바로 서원이 있다. 성리학을 전파하는데 중심이 되었던 교육기관으로 세속적으로 성공하는 법이 아닌 삶의 방식을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점차 뜻이 변색하여 부정부패의 원성이 자자했던 곳이 돼 버렸다. 원래 서원은 모범이 될 만한 성현을 모시고 그의 정신을 구현해 놓은 공간에서 유생들이 그의 삶과 사상을 직접 체험하도록 사림 세력이 지방에 설립한 사립 고등교육기관이다. 전국에 분포된 600여개 서원 중 제향자(성현으로 모신 분)의 정신과 전통이 잘 구현되고 있는 조선시대 서원 중 무성서원을 비롯해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무성서원, 돈암 서원의 9곳이 2019년 9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무성서원
무성서원이 자리한 칠보면 무성리는 서남쪽에 솟은 칠보산에 기대어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의 전면과 좌우에 넓은 들과 논이 있다. 칠보천이 흐르는 다리를 지나 서원 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온 홍살문에 이색적인 느낌을 연출한다. 

성황산을 배경으로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마을에 무성서원이 중심부에 있었다. 무성서원은 서원의 일반적인 입지 조건과는 달리 향촌내, 그것도 마을 중심부에 자리한 이례적인 사례라고 한다. 이것은 향촌민과 함께 하면서 지역문화를 선도하며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감당하려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주민 친화적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한다. 

▲무성서원의 기본적인 건축물
외삼문 대신 2층 누각인 현가루 담장 앞에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데 흥선대원군의 형이며 영의정을 지낸 이최응의 불망비(不忘碑) 등 무성서원 보존에 공이 있는 사람을 기념하는 비석과 무성서원 중수기념비 등이다.

2층 누각 현가루는 1891년 건립된 전면 3칸, 측면 2칸 건물이다. 현가루는 논어의 ‘현가불철(絃歌不輟)에서 따온 말로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그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힘든 상황이 되어도 학문을 계속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현가루 문을 들어서면 1828년(순조28) 중건된 정면 5칸 측면 2칸의 강학 공간으로 사용되는 강당이 들어서 있다. 좌우에 방이 배치돼 있고 중앙 3칸의 마루는 앞뒤가 트여 있는 특징을 보인다.

강당 전면에 걸려있는 ’무성서원‘이라는 서원 이름만 현판으로 내걸어 놓았다. 현판을 보면 1696년에 사액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교육공간으로 성종 6년 불우헌 정극인이 향약을 창설하면서 세운 향학당에서 유래했다.

강당 마루에 앉아 현가루를 바라보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은행나무는 공자의 학풍과 가르침을 뜻한다고 한다. 강당 뒤로 보이는 공간은 제향 영역으로 자연석 계단을 올라가 내삼문을 지나면 사당이 있다.

신라말 고운 최치원 선생이 태산태수로 부임, 8년 동안 선정을 베풀고 많은 치적을 남기고 이임해 떠나자 주민들이 생사당을 세우고 태산사라고 한데서 유래됐다. 태산사는 1484년에 창건하고 1844년에 중수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고운 최치원을 중심으로 불우헌 정극인 등 7위를 모셔놓았다.
서쪽에는 두 개의 비각이 긴 담장 안에 보호받고 있다. 신용희불망비와 1828년 강당을 중수한 태인현감 서호순의 공덕을 기리는 현감 서호순불망비이다. 무성서원 내·외부에 모두 15기 비석이 있는데 역대 현감들과 무성서원을 지켜낸 인물에 대한 공적비라고 한다.

동족 바깥에는 서원의 기숙사인 동재인 강수재가 있다. 일반적으로 동서 양재가 있는데 무성서원은 동재만 있다. 동재 앞에는 정문술 중수의조비, 최영대 영세불망비와 비각이 서 있다.
특히 병오창의기념비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듬해인 1906년 면암 최익현과 둔헌 임병찬 선생이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기 위해 호남의병을 창의한 역사적 현장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서원 입구 가까이에 있는 흥학재는 관람객들을 위한 안내소 역할을 하고 있다. 무성서원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전형적인 전학후묘식 배치 형태이다. 서원 정면의 현가루에서 일직선으로 강당, 사당이 한눈에 들어오는 배치도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무성서원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의 감회
평지에 펼쳐진 무성서원의 건물을 둘러보며 특정계급을 위해서가 아닌 민중 지방민들과 동거동락했던 향촌 자치기구의 올바른 서원의 모습이 남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선정을 베푼 인물들이 말년에 고향에 돌아와 후진을 교육했다는 특별함도 무성서원의 가치를 말해주는 것 같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주는 무성서원의 고즈넉함을 직접 방문해서 느껴 보자./김대연기자·red@/자료제공= 전북도청 전북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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