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고추장은 지역 브랜드로서 전국으로 소문난 명품 장이다.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고추장과는 차별화된 맛을 지니고 있다. 이는 주변 지역에서 자라는 질 좋은 농산물과 깨끗한 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이 좋다는 사실은 순창의 옛 지명 옥천(玉川)을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다. 그럼 순창 고추장은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줄 곳이 순창 회문산 기슭에 숨어있다. 이번에 소개할 곳은 바로 순창 만일사(萬日寺)이다.

▲명당 회문산에 있는 만일사(萬一寺)
사찰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산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사찰의 대부분은 산속에 있기 때문이다. 만일사(萬一寺)는 회문산 기슭 숨어있는 작은 절이다. 회문산의 절경인 문필봉(文筆峰)을 중심으로 깨끗한 물이 주변을 감아 도는 모습에서 회문산(回文 山)이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회문산은 풍수지리적으로 유명한 산 중 하나이다. 예로부터 회문산은 모악산과 서로 음양관에 있다고 불릴 만큼 명당이다. 회문산은 양의 기운이 강해서 아버지 산으로 불리고, 모악산은 음의 기운이 강해서 어머니 산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특히 회문산은 마치 다섯 신선이 서로 바둑을 두고 구경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전해져서 조선 시대 유명 지관들이 찾던 필수 명당이었다고 한다.
회문산의 절경인 문필봉(文筆峰)은 투구봉이라도 불린다. 이 봉우리는 남자들이라면 갖춰야 할 학문과 무예를 대표할 수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바위, 반듯하게 깎인 듯한 바위는 왕을 상징하는 옥쇄 바위라고한다.

▲이성계와 고추장                                    
만일사(萬一寺)는 삼국시대에 창건되었지만 절 이름은 태조 이성계의 설화에서 탄생했다. 무학대사가 고려 장수 이성계의 왕위 등극을 위해 무려 10,000일 동안 기도했다는 데에 나왔다고 하니 무려 27년간 기도를 했다는 게 의심스럽지만, 사실관계를 떠나서 무학대사의 염원이 얼마나 컸을 지 짐작해볼 수 있다.
순창 고추장은 이성계에 의해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고려 장수 이성계는 남원에 침입한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주변 지역 산세 지형을 확인하고 있었다. 마침 무학대사가 만일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으러 갔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 근처 농가에 들러 점심을 먹게 됐다.

이성계는 조촐한 밥상에서 꿀맛 같은 고추장을 만나게 된다. 상추와 꽁보리밥 사이에 고추장을 넣어 싸 먹었는데 어찌나 맛있었는지, 왕이 된 이후에도 오로지 순창 고추장만 찾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온다. 이에 대한 내용은 만일사 입구에 있는 비석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만일사비에는 왕의 진상품으로 올라가던 고추장과 만일사역사가 적혀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파괴되었던 만일사비를 복원해서 그 내용을 확인했지만, 현재는 비문이 마멸되어 눈으로 쉽게 읽을 수 없다.

▲세 번 쓰러져도, 세 번 다시 일어설 곳
이제 좋은 기운이 넘치는 만일사를 둘러보자. 만일사는 대웅전, 산신각, 일주문, 비각, 요사채 등의 건물로 이루어진 작은 사찰이다. 중앙에는 정면 3칸, 측면 3칸짜리 화려한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에서 제가 주목한 포인트는 외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벽에는 부처와 십육 나한상, 모란도 및 심우도(尋牛圖)가 그려져 있는데, 그림을 그릴 때는 자연 원재료를 쪼개고 갈아서 원료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성스러운 그림을 그리려면 노력과 시간은 필수인 듯하다.
대웅전 왼쪽 뒤로 돌아 올라가면 삼성각이 있다. 올라가는 길에 마주한 꽃들이 반겨주는데 이제 진짜 봄인가 싶을 만큼 이곳저곳 꽃구경하기 좋은 꽃밭이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 건물 삼성각은 화려한 단청이나 벽화는 없지만, 산신탱의 호랑이가 백호로 그려져 있다. 이외에도 종각과 고추장과 관련 있을 것 같은 장독대 등이 있어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좋은 자리에 있는 탓인지 만일사에는 크게 3번의 수난이 찾아왔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중건했지만, 또다시 정유재란 때 다시 불타게 되었고 또다시 중건했지만, 한국 전쟁 당시 남은 빨치산 잔당들의 본거지가 될 수 있다며 불태웠다. 그러나 만일사는 1954년 다시 중건되었다. 본래 있던 자리에 중건하지 않았지만, 3번의 수난이 있었음에도 3번 다시 탄생했다는 점은 분명 우리가 찾을 수 밖에 없는 곳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실감할 수 있다.

불교에서 3은 큰 의미를 지닌 숫자라고 한다. 세 번의 설법을 통해 중생을 구원하는 미륵불을 부를 수 있다고 해서 3은 큰 의미를 지녔다. 산기슭에 있어 수많은 기왓장과 나무와 돌을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겠지만, 이성계가 왕이 되길 바라는 염원처럼 전쟁 속에서 살길 바라는 마을 주민들의 염원이 통하지 않았나 싶다./김대연기자·red@/자료제공= 전북도청 전북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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