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의 선물

오피니언l승인2021.03.31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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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화(농촌진흥청)

지난 연말 모임에서였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다른 회원의 내 팔찌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유명한 보석이라며 다른 회원들에게 자랑을 했다. 자신도 같은 팔찌를 가지고 있다며 이백여만 원이나 주었다고 했다. 시시콜콜한 대화가 갑자기 화재가 고급 팔찌로 옮겨갔다. 회원들은 자꾸 가격을 물었다.

팔찌는 친구에게 선물로 받았다. 초등학교 친구가 선물로 준 것이라 가격을 몰랐다. 더구나 수백만 원이나 하는 물건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액세서리에 문외한이다. 평소 관심이 없어 금, 다이아몬드도 이름 정도 아는 것이 전부였다. 휴대폰에서 검색해 보았다. 주얼리 4대 명품 브랜드이며 다이아몬드 액세서리 전문 브랜드라고 씌어 있었다. 인터넷에서 고급 액스사리라고 하자 갑자기 팔찌가 고급스러워 보였다. 팔에 힘도 들어갔다. 나는 세계 4대 명품을 선물 받은 사실에 기분이 짜릿하고 좋았다. 그 순간 나의 속물근성은 가속도를 내며 내 속을 시끄럽게 했다.

선물을 준 친구는 소꿉친구인 미옥이다. 이웃 마을에 살았는데 초등학교 6년 동안 붙어 다녀서 둘만의 추억이 많았다. 둘이 짝꿍이 된 것은 1학년 담임 선생님 덕분이었다. 당시 부반장이었던 네게, 결석이 잦았던 그녀와 함께 학교에 오라고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6년 동안 데리러 다녔다. 미옥이 집 마당에서 미옥아 학교 가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르곤 했다. 그녀는 늘 내가 도착해야 가방을 챙기고 옷을 입었다.

나는 지각할까 봐 조바심이 났지만, 그녀는 천하태평이었다. 10분이면 도착하는 등굣길이 그녀와 함께 가면 멀고도 험난한 순례길 같았다.
 미옥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미용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난 뒤에는 늘 그녀는 미장원에 있었다. 그 미장원이 친척 집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의 책가방은 미용실에 던져놓고 머리 손질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번은 미옥이에게 미용실에 저녁 9시가 넘도록 붙들려 있은 날이 있었다. 그날 부모님은 나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맸고, 덕분에 처음으로 회초리를 맞았다. 그 후부터는 미용실에 있는 미옥이에게 발견될까 봐 줄행랑을 치곤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는 고향 근처 대학에 진학하였고, 미옥이는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업하면서 만나지 못했다. 오랜 기간 서로 연락 없이 지냈다. 직장과 가정에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사십 대에 들어선 어느 날, 낯선 번호의 전화가 왔다. 익숙한 목소리가 미옥이었다. 한 시간이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만나서 회포를 풀자며 약속을 잡았다.

이십 년 만에 만난 미옥이는 조그만 박스를 건네면서 괜찮은 팔찌라며 주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는데 선물까지 받아 기분이 좋았다. 나는 팔찌가 없던 터라 그녀가 준 선물을 오늘처럼 모임이 있는 날 가끔 팔에 끼고 나왔다.

지인들과 모임을 마치고 가는 지하철에서 미옥이에게 전화했다. 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수백만 원대는 팔찌가 부담스럽다며 이야기를 하는데, 전화기를 타고 미옥이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문디 가스나야! 내가 그런 돈이 어디 있노. 내도 십만 원 넘는 액세사리는 없는 기라. 동대문에 가면 진짜하고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든 모조품 있다 안카나. 거서 오만 원주고 산기라. 미안타. 모조품이라 섭섭하노. 내사마, 오만 원도 큰돈인 기라. 돈만 있으면 천만 원이 와 아깝겠노. 니, 내 마음 알제. 가스나야. 그 친구들에게는 이백오십만 원 짜리라 카라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내가 모파상의 ‘목걸이’ 주인공 마틸드와 그녀의 부자 친구 포레스티에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풉하는 웃음도 나왔다. 잠시동안 나의 허영심과 헛된 욕망을 보았다. 내 팔찌는 소꿉친구가 고민하며 신중하게 고른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명품 ‘미옥이 팔찌’이다. 이백오십만 원의 고급 팔찌와 오만 원의 미옥이 팔찌를 놓고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미옥이 팔찌’를 선택할 것이다. 학교 가자며 미옥이 집 마당에서 소리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직장 동료에게 미옥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마시던 커피를 들고 직원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무시간이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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