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국민연금공단
 
맞아. 너의 이름은 영진이였어. 얼굴이 잘생겼고 말이 별로 없었던 너였지. 1989년부터 잠시 보육원에서 만났던 너는 유난히 나를 따랐던 중학생으로 기억해. 덩치가 컸던 고등학생 때보다 중학생인 네가 좋았어. 부끄러움이 많아서 말보다 미소로 반겨주었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씩씩하게 지냈지. 공부도 제법 잘했고. 지나고 보니 좀 더 따뜻하게 해 줄 걸 하는 미련이 남는구나.

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보육원을 훌쩍 떠났지. 잘 지내라는 작별 인사도 못 하고 나는 너를 보냈지. 간간이 보육원 선생님에게 너의 소식을 들었어. 대전에 있다는 것과, 호적에는 올리지 않았지만 좋은 분의 양아들로 들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나는 네가 잘 지내고 있는 줄 알고 내 기억에서 너의 존재 자체를 잊었었지. 근데 말이야.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20년 전쯤 되었지 싶다. 그때, 네 나이가 20대 중반이었지. 너의 소식을 들었어. 보육원 선생님이 내게 한마디 던지더군. 셈. 영진이 죽었어요. 셈이 좋아했던 학생이었죠. 더 묻지 않았어. 먹먹한 소식에 아무 말도 못 하고 며칠을 우울하게 지냈지. 부모가 없는 이유가 너의 잘못이 아닌데. 그 후 보육원에 갈 때마다 잠시 잠시 네가 기억나긴 했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너는 내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어.

영진아. 근데 말이야. 요즘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서 네가 많이 생각나더구나. 입양아 ‘정인이’와 광주의 어느 보육원생 A군이라는 이야기를 보면서 부쩍 네 생각이 났어. 무슨 말이야고. 그렇구나. 너는 이곳 소식을 잘 알지 못하지.

정인이는 보육원 출신 아동인데, 직업이 목사인 부부가 입양했지. 행복하게 키우겠다고 서약까지 하고 정은이를 입양했는데. 입양한 지 8개월도 되지 않아 안타까운 일이 있었어. 태어난 지 16개월밖에 되지 않은 정은이를 양부모가 학대한 것이 원인이었지.

광주 보육원생 A군은 18세가 되어 강제적으로 사회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야 하는 부담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하더구나. 코로나 이전에는 홀로서기를 위해 아르바이트도 했다는데,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야. 우울증도 약간 있었다고 하더구나.

지나고 보니 아쉬움이 남아. 정인이를 낳은 엄마가 키워서 입양을 보내지 않았으며, 입양을 보내더라도 아이가 잘 자라는지 모습을 세밀하게 확인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야. A군 역시 마찬가지지. 18세가 되어도 자립이 부족한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많았다면, 이런 불행한 일이 없었을 텐데 하는 미련이 드는구나. 그렇다고 입양 간 아이들이나 보육원을 퇴소하는 원생들 모두 불행한 건 아니야. 대부분 행복하게 지내고 있단다.

광주 보육원 A군처럼 18세가 되어 법적 보호가 종료되어 보육원을 퇴소하는 아이들이 매년 2천6백 명 정도가 된다고 하네. 그들은 정부에서 자립지원금 5백만 원을 지원해 주고 있어. 네가 나갈 때는 3백만 원도 되지 못했는데 많이 올랐지. 보육원생에게 자립정착금과 수당 등 정부의 지원정책은 있긴 하지만, 아직 미성년자라 경제활동 경험도 없어 너처럼 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야. 갑자기 주어진 홀로서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잖아.

그래도 다행인 것은, 보육원생 자립을 위해 지원해 주는 분도 있단다. 자립지원을 위한 제도도 많이 좋아졌고. 영진아. 디딤돌씨앗통장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 역시 자립지원을 위한 통장이지. 후원자가 내는 금액만큼 정부가 지원하여 18세 퇴소할 때 자립지원금과 함께 원생들에게 준단다. 요즘 보육원생 대부분 후원자 덕분에 디딤돌씨앗통장은 하나씩은 가지고 있단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보육원생들이 경제적 도움만큼 정신적인 도움도 될 거야.

따뜻한 봄이네. 따뜻한 날씨만큼 이곳의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보육원생을 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학대받는 정은이도 홀로서기에 부담스러운 A군 같은 사람은 없는 그런 따뜻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 영진아. 어디에 있든지 간에 이곳에서 응어리진 마음 풀고, 정은이와 A군하고 편히 지내길 바란다. (원고지 9.8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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