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판소리를 대표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인 왕기석 명창. 지난 2018년 5월 국립민속국악원장에 임명돼 3년 가까이 민속국악원 정체성 찾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11일 2년 임기를 연장 받은 왕 원장은 그동안 추진했던 사업을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

▲민속국악원 원장직이 개방형으로 바뀐 뒤 첫 연임 원장이 됐다. 소감은?

3년 전 취임해서 시작한 일을 마무리할 시간이 생겼다. 민속국악원의 정체성 찾는 작업들을 벌여 왔는데 다시 기회가 주어져 기쁘다. 2년이라는 시간이 더 주어졌으니 열심히 잘해보겠다.

▲민속국악원 정체성과 관련된 사업은?

원장으로 취임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민속국악원은 소리를 중심에 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판소리의 고장인 남원에 민속국악원이 둥지를 튼 이유도 여기가 국악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원장으로 취임해 정체성을 찾아보고자 했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대한민국 판놀음’은 민속국악원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사업으로 창극을 비롯한 소리극, 창작극, 음악극, 연희 등을 총 망라하는 축제의 장을 펼친다. 올해는 특히 참가 단체를 섭외하던 방식 대신 공모를 진행함으로써 보다 많은 단체들에게 참여 기회를 주기를 했다. 판소리 완창무대 ‘소리판’의 참가 대상을 대폭 확대했다. 이난초, 김영자 같은 국가무형문화재 외에도 초중고 학생들의 꿈나무와 일반인 완창 무대를 늘렸다. 판소리 고장의 특수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다.

▲민속국악원을 대표할 전통 창극에 대한 계획은?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창작 창극 ‘지리산’ 이후 지난해 야심차게 기획했던 공연이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결국 올해로 미뤄졌다. 하지만 올해 다행히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됐다. 본원인 국립국악원이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민속국악원은 본원 70주년에 맞춰 오는 4월 23일과 24일 이틀간 전통 대형 창극 ‘춘향’을 본원에서 개막한다. 이후 ‘춘향’은 6월 대한민국 판놀음 개막공연으로 도민들에게 공개된다. 판놀음 폐막 이후에는 지역 순회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민속국악원을 대표할 ‘춘향’은 어떤 작품?

원전을 확 바꾸지는 않지만 춘향의 철학은 현재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춘향을 수동적인 여성이 아닌 주체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캐릭터로 설정했다. 성리학적 일부종사나 변학도라는 나쁜 사람에 저항하는 기존 모습 대신 몽룡을 주체적으로 사랑하는 여성으로 춘향의 정절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기녀들의 역할에서도 드러낼 계획이다. 6명의 기녀들은 어사출도 장면에서 탐관오리들과 같이 도망가는 게 아니라 이들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여성의 당찬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도창 형식의 기녀들이 부조리를 꾸짖는 소리는 춘향을 즐기는 또 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이 작품은 저와 류기형 연출이 같이 했고 정승희 단원과 고준석 단원이 각각 춘향과 몽룡으로 출연한다. 덧붙여 10월 중에는 ‘춘향’같은 대작은 아니지만 창작 창극 ‘별난각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전통 소재를 가미했지만 늘어지지 않고 템포감 중시한 작품이 될 것이다. 서연호, 홍원기. 김영길, 김백찬 등 뛰어난 스텝들이 참여해 수준 높은 공연이 기대된다.

▲최근 올해 사업계획을 발표했는데 창극 제작 외에 기대되는 사업은?

먼저 민속국악원이 7월부터 내년 말까지 전면적인 리모델링에 착수한다. 판놀음이 끝나는 7월 이후에는 민속국악원에서 공연을 할 수 없어 외부 실내 공연장이나 야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대한 이해를 구한다. 기존에 인기 있던 ‘다담’을 비롯해 올해 신설한 ‘목요다락’, 어린이 공연 ‘어린이 보따리’, 광한루에서 진행하는 ‘광한루원 음악회’. 소외 지역민을 위한 맞춤형 공연 ‘달리는 국악무대’, 유아 놀이형 국악체험 ‘덩덕쿵 국악놀이터’, 청소년 국악탐방 ‘국악은 내 친구’등이 열린다. 제7회 ‘민속악 포럼’도 기대해도 좋다.

▲판소리 대중화를 위한 사업은?

판소리 눈대목을 음반으로 제작하는 작업과 판소리 한글화 사업은 판소리 저변을 확대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판소리 사설은 고사성어로 이루어져 일반인에게 보급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판소리 보존전승은 무형문화재 제도 등 전문가들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대중화에는 제약이 많다. 판소리 한글화 사업은 일반인들이 누구나 쉽게 판소리를 즐길 수 있도록 기초를 만드는 일이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한글 사설과 거기에 맞춘 소리를 짜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최근 ‘이날치’ 등 국악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양면성이 있다. 판소리를 전공하는 젊은이 가운데 트로트로 진출하는 친구도 있고 이날치 밴드같이 활동하는 친구들도 많다. 이들의 활동이 판소리의 외연을 확대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보지만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흐름이 너무 강한 나머지 국악계가 자칫 정체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다. 국악 전공자들의 다양한 시도는 필요하나 전통에 대한 뿌리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보여주기식이나 흥미 위주의 활동은 지양해야 한다. 전통에 대한 뿌리를 튼튼하게 갖추면서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7월부터 리모델링을 한다는데 그 이유는?

올해 개원 30년이다. 시설이 낡은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관람객들의 공연 편의를 화대하기 위한 이유가 더 크다. 다녀가신 분들은 알겠지만 주차장이 부족하고 공연장 입구까지 동선도 복잡하다. 또 관람객들이 대기하는 로비도 매우 좁아 불편했다. 123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이런 문제를 개선할 계획이다. 이 공사가 끝나면 추후에는 공연장 내부 개석을 코로나19이후 변화한 관람 문화를 반영해 개선할 계획도 갖고 있다.

▲마무리 하실 말씀은?
지난 3년간 민속국악원 정체성을 찾는데 주력했고 어느 정도의 성과도 거두었다. 이런 흐름을 유지하면서 지역문화자산과도 협업하는 사업을 하고 싶다. 국립민속국악원이 남원에 자리한 이유를 잊지 않고 판소리와 창극 발전에 노력하겠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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