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지게

오피니언l승인2021.03.10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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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어머니의 입원 소식을 들어서일까. 식당 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식당 벽에는 60년대쯤으로 보이는 농촌 사진이 걸려 있다. 초가집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농부는 볏단을 지게에 지고 걸어가는 모습이다.

사진 속에 모습이 내 유년의 기억이다. 어제 본 영화를 다시 보는 듯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버지의 일과는 지게를 지고 들로 나가면서 시작되었고, 어둑한 저녁 지게 가득 나무며 곡식을 지고 오는 것으로 갈무리했다. 지금은 경운기며 이앙기며, 관리기까지 있지만, 유년의 아버지에 대한 내 기억은 지게가 전부라고 할 만큼 아버지는 항상 지게를 몸에 붙이고 다녔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가는 것이 일과였다. 나무하러 갔다. 지게가 없던 나는 집에서 혼자 지낼 때가 많았다. 친구들은 나무 한 짐 해놓고 묘지 공터에 모여 도란도란 어울려 놀았지만 나는 어울리지 못했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아버지에게 지게를 사달라고 졸랐다. 나만 지게가 없다며 졸랐지만, 대답은 공부나 하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어려운 부탁도 해결하셨는데, 유독 지게를 사달라고 부탁만큼은 매번 거절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당신의 지게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셨다.

언젠가 아버지의 지게를 몰래 가져다 뒷산에서 솔가지를 해온 적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를 위해 무엇인가 해주고 싶었다. 아버지의 나뭇짐처럼 생솔잎을 꺾어 바닥에 깐 뒤 그 위에 솔가리를 차곡차곡 쌓고 칡 줄기로 묶었다. 아버지의 나뭇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법 나뭇짐의 티가 났다. 나는 내 키만큼이나 큰 지게에 솔가리 짐을 지고 뒤뚱거리며 집으로 들어섰다.

내심 대견하게 여겨 칭찬하리라는 기대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달랐다. 어머니에게 심하게 화를 내셨다. 그리고는 내가 힘들게 해 온 나무를 골목으로 던져버렸다. 당황한 나는 울었고, 나로 인해 심한 핀잔을 들은 어머니에게 무척 미안해해야 했다. 그 일이 있었던 뒤, 나는 지게를 진 적이 없다. 아예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 후에도 아버지는 변함없이 사랑을 보냈지만, 그때 무서운 기억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오래도록 받아들이지 못했다.

군대 마지막 휴가에 우연히 아버지 예금통장을 보았다. 내 이름과 등록금이라고 적혀 있는 통장에는 많은 돈이 있었다. 천수답 300평이 전부였던 아버지는 내 학비를 위해 지게를 지셨다. 농한기에는 산판 일과 사방사업을 농번기에는 다른 집 농사일을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가셨다. 그렇게 번 돈을 꼬박꼬박 저축하셨다.

입금한 금액도 몇천 원부터 몇만 원까지였으며, 입금 횟수가 많아 같은 계좌통장이 몇 개나 되었다. 그때 나는 근면하게 살아가시는 아버지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되었고,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느꼈다. 그 후 아버지의 짝사랑은 끝이 났다. 그런 일이 있은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아버지보다 내가 더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었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난주 아버지와 함께 뒷산에 있는 밭에 간 적이 있다. 좁은 산길이라 아버지가 먼저 앞서고 내가 뒤를 따랐다. 그날도 아버지는 지게를 지셨다. 앞선 아버지를 보았다. 여전히 나에게는 든든한 아버지이었지만 느낌이 달랐다. 검던 머리는 어느새 하얀 눈이 내렸고 걸어가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문득 아버지가 지고 있는 지게에 내가 짐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학비를, 결혼 비용을, 내 집 구입자금을. 내 생활에서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내가 성인이 된 지금도 아버지는 큰애의 대학입학금을 주기도 하셨고, 아직 중학생인 막내의 대학입학금까지 내주시겠다며 꼬박꼬박 저축하고 계신다.

팔순이 된 지금도 내가 짊어질 지게 짐까지도 당신이 함께하시겠다고 한다. 게다가 고향 집에 갈 적마다 손수 재배한 콩이며, 쌀이며, 야채며, 양념까지 소중하고 좋은 것은 모두 주신다. 중년으로 들어선 지금 나는 식당 벽에 걸린 사진을 통해 ‘아버지의 지게’라는 존재를 생각해 본다.

인생의 항해를 시작할 때 남들보다 큰 배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뛰어난 항해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심한 태풍을 만나고 거센 파도를 만나도 꿋꿋하게 지금까지 걸어왔던 것은 아버지의 지게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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