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라인 효과

오피니언l승인2021.02.17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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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지났는데 연재할 글을 시작도 못 했다. 소재조차 찾지 못했다. 신문사 원고 마감일이 화요일 오전인데 벌써 월요일 아침이다. 오늘 근무시간을 생각하면 서둘러야 할 것이 분명한데 이상하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조급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원고 마감일인 월요일 밤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신문 연재를 위해 매주 한편씩 글을 쓰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준비된 글이 몇 편 있어 교정만 해서 보냈지만, 게으름을 핀 요즘은 원고마감일 저녁에 글을 쓴다. 그런데 나는 원고 마감일 저녁에 글이 유독 잘 쓰인다. 생각지도 못한 소재가 떠오르고, 좋은 글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나는 시험 전날 공부가 잘되는 학생처럼 마감일에 글 쓰는 효과가 높다. 주말 내내 고민하던 글이 월요일 저녁만 되면 부족하긴 하지만 마무리가 되었다. 데드라인이 있어 긴장과 몰입이 높아지는 이유일 것이다. 이처럼 마감 시간이 임박했을 때 높은 효과를 내는 것을 데드라인 효과라고 한다.

데드라인은 언론사에서 기사 마감 시간이란 개념으로 쓰인다. 즉, 취재한 기사를 편집부에 넘겨야 하는 최종 시간이다. 기자들은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취재한 내용을 높은 집중력으로 마무리해서 편집부로 넘긴다. 그들 역시 데드라인에 임박할수록 기사가 잘 쓰여진다고 한다.

언론사에 많이 쓰이는 데드라인은 원래 전쟁용어였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포로수용소에서 생겨났다. 남부군은 포로수용소를 만드는 비용이 부족해서 넓은 공터에 텐트를 치고 포로들을 수용한 뒤 울타리를 만들었다. 서너 명이 힘주면 무너질 정도로 약한 울타리였다. 만약 포로들이 울타리를 넘게 되면 탈출을 시도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사살했다고 하는데, 이 울타리를 데드라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데드라인은 원래 영어 단어 그대로 죽음의 선이었지만, 요즘은 최종기한의 의미로 쓰인다.

데드라인은 어떤 일에도 존재한다. 신문을 연재하는 내게 원고마감일이 데드라인이고 문학회에서는 토론 수업을 위한 원고 제출 기한이 있다. 또한 직장에서는 각종 보고서나 민원처리 기한이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 효도할 수 있었던 데드라인은 살아 계셨을 때까지였으며, 내가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데드라인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일 것이다. 어떤 일이든 데드라인이 중요한데, 가끔 그것을 놓쳐 낭패를 겪기도 한다. 

오늘 사무실에 퇴직한 직원이 찾아왔다. 30년 전부터 함께 근무했던 직원이라 반가웠다. 그는 퇴직 후 사무실 근처에서 3개월 동안 취업을 했는데, 오늘 마지막 근무일이라며 인사차 방문했다. 그와 자리에 앉아 퇴직한 뒤 무엇을 할 것인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가 대화를 했다. 준비되지 않는 퇴직은 힘들다고 한다. 퇴직 후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도 않지만, 설사 취업을 하더라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는 재직 중에 퇴직 후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며 자격증을 권유했다. 퇴직 후에는 무엇보다 시력 때문에 글씨가 보이지 않아 자격증 준비를 하고 싶어도 못 한다고 했다.

퇴직 직원이 다녀간 뒤 잠시 마음이 바빴다. 퇴직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 때문이었다. 막내 아이가 이번에 수능을 또 쳤으니, 대학 졸업까지는 퇴직 후 2년 이상은 내가 벌어야 한다. 급한 마음에 백지에 자격증을 적어보았다. 영어를 손 놓은 지 30년이 넘었으니 영어 과목이 없는 자격증을 적어보았다.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 전기기사... 쉽게 딸 수 있는 자격증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기간이 불과 2~3년 정도라고 생각하니, 원고 마감일 저녁처럼 데드라인 효과를 생각해 보았다. 시작을 하면 급한 마음에 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후에는 매여있는 생활은 하고 싶지 않다. 30여 년이나 직장생활을 했으면 되었지 이제 더 이상 직장이란 조직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사업을 하든지 아니면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싶다. 물론 수필이나 소설을 쓰는 작가 생활이 노후 생활에 도움은 되겠지만 생활비를 충당할 만큼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데드라인 효과를 시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퇴직 전까지 목표를 자격증 두 개로 정했다. 마침 코로나로 계모임 등 행사도 없으니 주말과 저녁 시간을 이용해 보련다. 데드라인 효과로 내가 원고를 쓰는 것처럼 자격증 취득도 그 효과를 기대하고 책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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