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헌율 익산시장

견우미견양(見牛未見羊)이라는 말이 있다. 소는 보았기에 가엾은 줄 알았고, 양은 보지 않았기에 가엾은 줄 모른다는 뜻으로 제나라 선왕이 끌려가는 소를 보고 소가 사지로 끌려가는 모습이 가엾어 차마 볼 수 없다며 소를 양으로 바꿔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일화에서 나온 고사성어다.

누구나 보지 않은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에 대하여 한층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행정에서도 현장 행정을 중요시하고, 서류만 보고 일 처리하는 것을 늘 경계한다. 또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은 이야기를 마냥 믿는 것보다는 일선에서 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귀로 듣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 다수의 사람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민들과 개별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다수의 사람과 나눈 대화는 공공을 위한 정책을 마련할 때 큰 도움이 됐는데, 직접 대면하여 면대면으로 나눈 대화는 좀 더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친밀감과 유대감이 느껴졌다.

시의 도움이 절실한 집들을 직접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본인들이 익숙한 장소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더 편해 보였고, 그분들의 삶이 녹아있는 집은 주인이 직접 말하지 못한 이야기까지 들려주는 듯했다. 어쩌면 차마 말하지 못한 이야기이기도 할 터였다.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며 함께 살던 이웃들이 모두 떠난 빌라에 혼자 살고 계신 어르신을 만났을 때는 마음이 무거웠다. 모두가 떠난 곳에 홀로 남아 쓸쓸하게 살고 계신 어르신의 소망은 큰 것이 아니었다. 비가 새지 않는 것, 눅눅하게 젖은 벽지와 장판을 새로 하는 것이었다.

9명의 자녀들을 키우는 다둥이의 집 벽은 그림판이 따로 없었다. 여기저기 낙서가 가득한 손때 묻은 벽지, 11명이 생활하기에는 비좁을 텐데도 그 집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 아이들이 걱정 없이 계속 웃으며 자라날 수 있는 익산, 누구도 언제 무너질지 모를 위험한 집에 홀로 남지 않는 익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들을 직접 만나 소통하는 것은 내가 견우(見牛)하여 직접 시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분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허나 미견양(未見羊) 또한 가엾지 않다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직접 보지 못한 곳에 더한 어려움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더 깊어졌다.

필자는 언제나 익산의 발전을 꿈꾸지만 그 발전의 이면에 그늘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제도적인 잣대로만 판단하여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는 일이 없도록 항상 귀를 열어두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하겠다.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은 찾아온다. 그 순간 가족이나 친구, 연인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처럼 익산시를 떠올릴 날을 꿈꾼다. 우리는 언제나 귀 기울여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