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현(전기안전공사)

저녁 식사를 하는 아내의 얼굴이 어둡다. 밝은 주방 전등빛이 음식을 맛깔나게 비춰주는데 시름 깊은 아내의 얼굴은 더욱 그늘져 보이게 만든다. 무엇이 문제일까? 음식을 차려주면 군말 없이 잘 먹던 아내였기에 저녁 반찬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필시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아내의 직장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전주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아내는 논산으로 이직했었다. 그곳에서 1년 남짓 근무하다 나와 만나 결혼을 하며 지금의 터전인 완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후 김제에 직장을 얻어 만족하며 근무하던 아내는 그곳에서도 1년을 못 채우고 출산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아이가 세 살이 되자 아내는 사회생활이 그립다며 다시 취업하겠다고 선언했다. 집에서 쉬면 좋으련만 아내가 전업주부보다는 커리어우먼에 가까운 성향을 갖고 있던 걸 알기에 말릴 수 없었다. 그래도 요즘 불황이라 취업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구직활동하면서 느껴보길 바랐다.

내 바람과는 반대로 아내는 이내 도깨비 방망이를 내려친 마냥 뚝딱 취업했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어렵다고 하는 시기에 금방 취업한 아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너무 빨리 직장을 구한 부작용일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아내의 직장생활은 또다시 1년도 못 채우고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황의 칼바람에 아내가 일하는 직장 또한 큰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아내의 근무지 인근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나오면서 방문하는 고객 수가 감소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이대로의 매출이라면 몇 달 내로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장기불황이 이어지다 보니 어려운 곳이 부지기수지만 막상 내 가족이 그 대상자가 되니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아내는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며 사회생활이라는 바다에 배를 띄웠었다. 하지만 바로 코로나라는 태풍을 만나 좌초되기 직전이었다. 아내의 얼굴에 드리운 우울한 그림자 또한 짙은 해무와 같이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축 처진 아내의 모습을 보다 보니 아내가 예전부터 얘기했던 꿈이 떠오른다. 결혼 전부터 아내가 말해온 꿈이 있다. 피부관리실을 차리는 것이다. 아내는 40대가 되면 자기 이름을 건 피부관리실을 오픈해보겠다고 늘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해 직장생활을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자 그 꿈도 어느새 잊혀 가고 있었다.

유명한 경영자들의 책을 보면 위기를 기회로 삼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지금 아내가 겪고 있는 직장에서의 위기를 또 다른 시작을 위한 기회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바로 아내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새로운 시작의 기회로 말이다.

꿈을 싹틔우려면 씨앗을 심을 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내가 꿈을 그저 꿈으로만 간직했던 이유도 싹을 심을 땅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꿈을 심을 장소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 알아보았다. 마침 집 앞에 있는 구분상가가 급매물로 나온 것을 발견했다.

요즘 경기가 어렵다 보니 상가 임대가 나가지 않아 급매물로 처분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이번에 눈여겨본 상가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임대를 내놓으면 공실이 될 확률이 높은 곳이었지만 우리가 직접 가게를 차려 운영하기엔 그만한 곳이 없는 것 같았다.

며칠간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는 자신의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에 대해 기쁘면서도 두렵게 느꼈다. 내년에 아내가 샵을 차리기 전까진 공실을 피할 수 없기에 그동안 내야 할 은행 이자와 관리비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한걸음이 필요하기에 함께 손을 잡고 내딛기로 했다.

그렇게 아내의 꿈을 그리기 위한 스케치북이 어렵사리 마련되었다. 이제 그 위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은 아내의 몫이다. 나 또한 큰 각오를 하고 마련해준 것이기에 아내가 남편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고 성실히 잘 준비하여 원하는 바를 이뤄 나가줬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