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과 학교와 마을의 동반성장을 꿈꾸는 산내들희망캠프협동조합 이기열 대표

완주군 운주면은 전라북도의 북쪽 끝자락에 있다. 예로부터 호남과 서울을 잇는 17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지만, 대둔산과 천둥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이다. ‘산내들희망캠프협동조합’ 이기열 대표(53)는 지난 2004년에 이곳으로 이사왔다. 젊은 시절부터 산을 좋아해서 대둔산 기슭에 새로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산세 좋고 평화로운 것 말고는 모든 것이 열악했다.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나라의 농산촌이 대개 그렇듯이 고령인구가 많고 젊은 사람들의 유입이 없어서 2천 명이 채 안 되는 인구마저 갈수록 줄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고산촌마을도 마찬가지다. 모두 서른다섯 가구 58명의 주민이 살지만 홀로 사시는 노인들도 많고 아예 마을을 떠나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분들도 있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터 잡고 살려면 우선 아이들 교육여건이 확보되어야 한다. 운주면에는 운주초등학교, 운주중학교, 한국게임과학고등학교 이렇게 세 학교가 있다. 학생 수 240명쯤 되는 게임과학고등학교는 전국 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특성화고등학교이니 지역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한 곳씩 있는 셈이다. 그런데 갈수록 학생 수가 줄고 있다.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27명, 중학교는 18명뿐이다. 그나마 운주중학교 학생 18명 중 9명은 3학년 학생들이다. 내년 초에 그들이 졸업하고 신입예정 학생은 달랑 3명이니 내년에는 전교생이 12명으로 줄어든다. 농산촌에 있는 학교들이 학생이 없어서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는 무엇보다도 학교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교는 마을의 중심이고 기둥이다. 청년들과 젊은 학부모들이 정착할 수 있으려면 학교가 있어야 한다. 학교를 살려야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래서 교육공동체 활동을 시작했다. 2010년부터 뜻있는 주민들과 함께 ‘운주교육을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운주면 교육공동체’를 결성해서 사무국장을 맡았다. 운주면에 있는 세 학교의 선생님들과 학부모, 학교운영위원은 물론 면장님까지 참여해서 지역사회와 학교의 연계를 이뤄냈다. 토박이가 아닌 그가 이렇게 분주한 활동을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군의원 출마해서 정치하려고 한다.”는 구설도 있었다. 그러나 사심 품지 않고 묵묵히 일하다보니 그런 오해는 없어졌다.

산밖에 몰랐던 시절, 여러 번의 고비
이 대표는 본래 전문산악인이었다. 히말라야에 수도 없이 다녀왔고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했던 ‘믹스등반(암벽 빙벽 혼합등반)’ 분야의 초창기 개척자이기도 하다. 청소년기의 방황을 거쳐 늦게 들어간 대학에서 산악회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산만 알고 살았다. 아내 이은숙 씨도 대학 산악회 후배였다. 이은숙 씨는 놀러 다니면서 고기 구워먹고 기타 치면서 노는 동아리인 줄만 알고 산악회에 가입해서 호된 고생을 하다가 선배인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대학 산악회의 활동은 동네 봉우리들을 트래킹하는 것이 아니라 까마득한 암벽을 ‘등반’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내내 산에 빠져 살다 보니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1997년에는 해외 원정을 위해 암벽등반 훈련을 하다가 추락해서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함께 있던 일행들이 산악전문가들이어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선배 한 분이 침착하게 응급처치를 하고 들것이 올 때까지 기다려서 후송했다고 한다. 만일 당황해서 그를 들처메고 산을 달려 내려왔더라면 척추 영구손상으로 평생 불구의 몸이 될 뻔했다. 그때 그를 구해주었던 그 선배는 이듬해 히말라야 원정길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추락사고로 척추 골절상을 입은 그는 석 달 넘게 병원 침대에 누워만 지냈고 반년 동안 보호장구를 착용해야 했다.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다시 산행에 나섰다. 입원 기간 내내 대소변을 받아내주었던 아내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남편에게 산은 그냥 삶 그 자체예요. 때가 되면 밥 먹고 화장실에 가듯이 안 하면 안 되는 당연한 일상이죠. 그러니 말릴 수 없죠.”
1999년 엄홍길 대장과 함께 ‘밀레니엄원정대’의 일원으로 히말라야 등반에 나섰다가 눈사태를 만나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해발 8,586미터인 칸첸중가 정상공격을 두 번 시도하다가 악천후 탓에 포기하고 하산하던 중 눈사태에 매몰되었다. 다행이 일행들에 의해 구조되었지만, 눈더미에 묻혀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고 한다.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당시에 만 네 살 된 아들과 두 돌이 채 안 된 딸, 아내 생각에 아득했다.
사고는 또 있었다. 2003년에는 등반 중에 추락해서 다리가 부러졌다. 하마터면 다리를 절단할 뻔했을 정도의 심각한 부상이었다. 여덟 번이나 큰 수술을 받았고 골절 부위에 골수염이 생겨서 계속 항생제를 맞아야 했다. 매월 2백만 원 이상이 드는 치료비는 물론이고 가족의 생계도 막막하던 시절을 많은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힘겹게 버텨냈다. 가장 고마웠던 분은 당시에 근무하고 있던 직장의 사장님이었다. 본래 산악인이셔서 그 인연으로 입사했던 회사였고 평소에도 그의 활동에 알게 모르게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그가 병상에 있는 동안 매달 찾아오셔서 적지 않은 금액이 들어 있는 봉투를 침대 머리맡에 슬그머니 놓고 가셨다. 장기간 출근을 못하는 처지라서 사표를 내겠다는 것도 극구 만류하시면서 직장을 유지하게 해주셨다.
그렇게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고도 그는 끝내 산을 포기하기 않았다. 2008년 중국 사천성 야오메이(해발 6,250m) 원정대장, 2010년 파키스탄 K2 원정대장 등을 맡아서 후배들을 이끌었다. 얼마 전까지 전국에 7백 명의 회원을 둔 대한산악구조협회 전무이사와 대전산악연맹 전무이사를 맡기도 했다. 지금은 대둔산산악구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네팔 시리사라다학교와 운주농촌유학센터
운주면에 정착한 이 대표는 지역의 산악인 몇 명과 함께 ‘산내들희망캠프’를 만들었다. 산내들희망캠프는 현재 조합원 8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협동조합이 되었고, 초창기에 사무국장을 맡았던 그는 2018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산내들협동조합은 지역아동센터와 청소년 캠프 운영 등의 지역활동뿐만 아니라 해외 봉사활동과 후원에도 적극적이다. 생명의 가치와 교육의 기회는 모두에게 평등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산내들은 2011년부터 네팔 고르카 지역의 오지마을에 있는 시리사라다 학교를 후원해오고 있다. 이 대표가 여러 차례 히말라야를 등반했고 청소년들과 함께 ‘히말라야 오지마을 탐사대’ 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곳이다. 자원봉사자들이 가서 학교 건물을 보수해준 것을 시작으로 마을보건소 겸 학교 양호실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이 학교 출신 여학생을 수도 카트만두의 간호학원에 보냈다. 간호사가 되어 마을로 돌아온 이 학생은 학교 양호실 겸 마을 보건소에서 주민 건강을 책임진다. 이 간호사의 봉급은 물론이고 영어도서관, 방과 후 학교, 영화 상영을 할 수 있는 문화센터, 컴퓨터실 운영도 지원하고 있다. 9명의 아이들에게 매월 장학금도 지급한다.

그런데 2015년 네팔을 강타했던 대지진으로 안 그래도 위태롭던 학교 건물이 무너져버렸다. 산내들희망캠프협동조합이 나서서 학교를 새로 짓기 시작해 작년 2월에 새 건물이 준공되었다. 적지 않은 돈이 들었지만,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아 기적을 만들어냈다.이 글이 지면에 실리는 11월 16일에는 ‘운주농촌유학센터’가 문을 연다. 운주면 교육공동체가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에 ‘광화문 1번가 정책공모’에 제안했던 사업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국비와 지방비 투자로 설립된 농촌유학센터를 산내들희망캠프협동조합이 위탁받아 운영한다.

농촌유학센터는 시골로 유학오는 도시지역 학생들을 위한 생활시설이다. 운주중학교 옆에 있는 이 시설은 모두 14명의 학생들이 2인 1실로 생활면서 다양한 체험활동도 함께할 수 있다. 야영캠프, 독서논술, 국내외여행, 역사캠프, 인문학캠프, 야영, 독립군역사탐방캠프, 동학농민혁명역사탐방, 농사체험 등을 준비하고 있다. 학생 수가 줄고 있는 지역의 학교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이곳에 유학온 학생들은 건강하게 뛰어놀며 다양한 체험과 열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윈-윈 프로젝트’다. 산내들희망캠프협동조합과 이기열 대표는 아이들과 학교와 마을의 동반성장을 꿈꾸며 오늘도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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