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를 닮은 섬, ‘위도(蝟島).’부안에서 13km쯤 떨어진, 노을이 내려앉는 쪽에 위도는 있다. 격포항에서 큰 걸음을 하면 단숨에 건너 뛸 수도 있을 것처럼 지척인 곳. 그러나 막상 뱃길로 들어서면 40분이나 걸리는, 가까운 듯 결코 가깝지만은 않은 섬. 지금, 그 섬에 간다.

순우리말 땅이름이 살아 있는 섬

서쪽 당대 너머 해수욕장이 있는 도장금, 소금 생산하는 소금벌이라 해서 벌금, 떡시루 모양의 시루금, 파도가 길게 치면 어선이 몰려온다는 파장금, 솥뚜껑과 같다하여 솥 정(鼎)자를 붙인 정금, 마을이 깊은 지형에 위치해 깊은금, 살을 쳐서 고기를 잡는다 하여 살막금, 유일하게 벼를 경작한다 하여 논금, 달빛이 바다에 아름답게 비친다 하여 미영금, 개펄 너머 마을인 개들넘…….

 가는 곳마다 순우리말 땅이름들이 참 정감 있게 다가오는 곳이 위도다. 이밖에 돛단여, 배잡은여, 숨은여, 검은여, 딴달래섬여 등 바닷물 속에 숨어 있어 잘 보이지 않는 암초를 뜻하는 ‘여’자가 붙은 토박이말로 된 이름도 있다. 격포에서 출발해 섬에 다다르기 전 먼저 맞이해주는 섬도 ‘돛단여’이다. 돛단여는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돌섬이지만, 뱃길을 심심치 않게 해주는 데는 손색이 없다.

심지어 위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미영금 해안의 돌자갈마저도 ‘깻돌’ 또는 ‘팥돌’, ‘콩돌’이라고 불린다. 곡식이 많이 날 수 없는 섬 지역의 특성상 그렇게라도 얼마 안 되는 밭작물의 풍성을 염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려나, 이렇게 예쁜 이름들을 가진 곳이라면 그것만으로도 한 번 살아볼 만한 곳 아닐까. 

금(金), 즉‘돈’이 붙는 섬

섬 안에‘금(金)’자가 붙은 지명이 많은 데도 이유가 있다. 금(金), 즉‘돈’이 되는 곳이라는 얘기다. 무인도인 돛단여와 심청이가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바닷물에 뛰어들었다는 임수도 앞바다를 지나 섬에 들 때 제일 먼저 뱃머리가 닿는 곳도 파장금항이다.

어선이 몰려와 돈이 된다는 뜻이름만큼 파장금항은 대규모 조기 파시로 이름이 높던 곳이다. 1970년대 초까지도 각지에서 몰려온 수백 척의 배들이 위도를 둘러싸다시피 하며 조기를 잡아 파장금에 들어와 파시를 이뤘던 것.

위도 남쪽 바다가 바로 조기잡이의 보고였던 칠산어장이었다. 과거에는 지금의 영광굴비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잡혔다. 명태가 동해안을 대표하는 어종이라면, 서해안에서 첫 번째로 손꼽히는 물고기가 바로 조기 아니던가. 명태가 설악의 매운 바람을 맞으며 황태가 되듯 조기는 칠산바다의 다습한 해풍 속에서 꾸덕꾸덕한 굴비가 될 수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데 없는 생선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온 굴비 말이다.

당시 파장금항은 섬 속의 거대 도시였다고 한다. 30여 곳이 넘는 술집이 오밀조밀 늘어서 있고, 뱃사람들에게 술을 파는 여성이 무려 600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하니 말해 무엇 하랴. 지금도 파장금항 마을 뒤쪽 좁다란 골목으로 들어서면, 그 때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농짓거리를 던지는 뱃사람이나 흥정을 하는 장사꾼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당시의 북적임이나 흥청거림도 없다.

다만 골목골목 즐비해 있는 술집이며 여인숙, 술파는 여성들이 사용하던 공동 목욕탕과 몇 개의 우물이 한때의 영화를 상기시켜주기라도 하듯 무너지고, 피폐해지고, 파손된 모습으로 서 있을 뿐. 그리고 그것들은 싸구려 화장을 하고 술파는 여인들처럼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또 다른 방법으로 붙들고 있다.

조기가 더는 나오지 않게 되면서 1970년대 말 다시 키조개 잡이로 사기를 드높였던 파장금. 1980~1990년대에 들어서는 낚시꾼들의 천국으로 불리며 또 한 번 돈줄을 놓치지 않았던, 그야말로 생금 터였다. 이후 1999년 27km의 섬 일주도로가 뚫린 뒤로는 어떤가. 사철 관광지로 거듭나 지금껏 빼어난 경관과 서해의 황홀한 해넘이 낙조 장관을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벌금리 ‘대월(大月) 습곡’의 신비

위도는 6개의 유인도와 24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그 30여 곳의 섬을 하나로 뭉뚱그려 위도라 부른다. 이곳이 지난 2017년 전북 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부안의 적벽강?채석강?솔섬?모항?직소폭포와 함께 총 6곳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 중 위도는 약 8천 5백만 년 전 호수 환경에서 퇴적된 육식공룡의 알 화석을 관찰할 수 있어 흥미롭다. 특히 위도 서측 해안을 따라 벌금리 퇴적층이 장관을 이룬다. 격포리 퇴적층처럼 호수 안으로 퇴적물이 흘러들어와 쌓이고 굳어져 만들어진 것.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크기 때문에 중생대 백악기 말에 분출한 화산이 기반암을 이룰 수 있었다.

벌금리는 공룡알 화석과 함께 하늘이 숨겨놓은 것만 같은 비경이 또 한 군데 있다. 바로 ‘대월습곡’이다. 습곡은 지층이 수평으로 퇴적된 후 압력을 받아 휜 상태를 말한다. 채석강이나 적벽강에서도 이런 상태의 습곡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위도의 습곡은 다르다.

그 크기가 거대 바위만 해서 이름 하여 ‘대월(大月)’, 다시 말해 ‘큰 달’이란 명칭이 붙은 것. 지층이 둥글게 휘어 돌아 만월을 낳았다고 하나, 지금은 세월의 어느 시기에서인가 반절이 뚝 떨어져 나가고 없다. 그래서 만월이라기보다는 ‘반달’로 보아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 반달이지 워낙 방대한 크기여서 ‘큰 달’이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다.

사실 위도는 그 명성과 달리 외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천혜의 해안절벽이 많다. 깊고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망집을 여의고, 집착을 떠나 있게 하는 보기 드문 절경들. 자칫 그 풍광에 눈이라도 베일 것만 같은 아찔함이 느껴지는 곳이 발 딛는 곳마다 산재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소유한 것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나는 보고 있노라고, 사람들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 가운데에서 또한 가장 좋은 것을 나는 알고 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곳들.

일제의 창지개명으로 살가운 이름을 잃어
 
벌금리와 위도해수욕장 사이에는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지형이 있다. 그 끝부분에 용멀 또는 용머리라고 부르는 곳의 해식단애 바위 경치도 채석강 저리 가라 할 만큼 빼어나다. 누가 일부러 숨겨놓은 것도, 스스로 숨어 있는 것도 아닐진대 위도에 와서 한 발 한 발 재겨디뎌 보지 않으면 쉬이 볼 수 없는 풍광이다.

이 용머리 해안 들머리가 벌금항 옛 여객선터미널 옆인데, 이곳 사람들은 ‘갯것 다니던 길’이라고 표현한다. 갯것을 채취하러 다니던 길이라는 말이다. 이 역시 정겹고 살가운 표현이라 가슴에 깊이 담긴다. 정겹고 살가운 것이 그뿐이겠는가.

대월습곡 맞은편 쪽에는 ‘딴달래’라는 이름을 가진 딴달래 섬이 있다. ‘딴’이라는 말도 ‘여’처럼 순우리말인데, ‘조금 떨어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뒤집어 말하면 육지에 거의 붙어 있는 섬을 뜻한다. 그러고 보니 위도에는 딴정금, 딴치도, 큰딴치도, 작은딴치도, 딴시름 등 ‘딴’자가 붙은 곳이 더러 있다. 그 몇들 중에서도 딴달래 섬은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 때문인지 외딴 섬마을 맑고 어여쁜 소녀를 연상시켜 살포시 안아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일제의 개명작업으로 살가운 지명들이 많이 사라진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현재는 대나무나 싸리나무로 살을 만들어 썼다는 ‘살막금’도 ‘전막(前幕)’으로 고쳐져 있고, 솥을 걸고 밥을 짓는 형국이라 해서 이름 붙은 ‘밥섬’은 ‘식도(食島)’, 수군 진영이 있다 해서 ‘진말’이라 불리던 마을은 ‘진리(陣里)’가 되어 있다.

고슴도치를 닮지 않은 고슴도치 섬

위도는 고슴도치 섬이라고는 하나 생김새를 보아서는 고슴도치 모양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떨어져서 보아도, 가까이서 보아도 고슴도치를 연상할 만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고슴도치 섬이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역 향토사학자들이 찾아낸 옛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 송나라 때의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를 다녀간 후 쓴 『고려도경』. 거기에 서긍이 우리나라의 서남해안을 둘러보다가 위도에 들러 주민들로부터 식수를 공급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생하는 소나무의 솔잎이 고슴도치를 닮았다 하였다.

실제로 위도의 소나무는 독특하다. 지천으로 널려 있으면서도 서해의 거친 바닷바람 탓에 키가 2m를 채 넘지 않는다. 해풍에 시달리느라 허리를 곧게 펴고 있는 소나무도 없다. 일부러 그렇게 키워놓은 것도 아닌데 다들 이리저리 뒤틀리고 구부러지고 해서 멋진 분재처럼 생겼다. 나무가 이러할진대 솔잎이라고 다를까. 어른 새끼손가락 길이보다 작고 억센 것이 위도 소나무의 솔잎인 것이다. 때문에 이 솔잎이 고슴도치 털을 닮았다 해서 ‘고슴도치 섬’이라는 이름이 나붙은 것 아닐까 한다는 것.

그도 그렇지만 섬을 다니다 보면 풍수지리적 차원에서 고슴도치의 형상을 하나하나 알아갈 수 있다. 망월봉(望月峰)이 고슴도치 머리고, 밥섬인 식도는 그 머리 앞에 놓여 있으며, 용머리는 고슴도치 앞발, 살막은 고슴도치의 꼬리, 위도 사람들 발음대로 ‘짚은금’으로 불리는 깊은금은 고슴도치 자궁 자리이다. 깊은금은 일 년 내내 샘물이 안 마르는, 물이 귀한 섬 지역에서는 특별한 곳이다. 그런데 바로 이 자리가 오래 전 방폐장 자리로 꼽혔었다.

구불구불 해안 절경이 아름다운 신비의 섬, 위도. 버스 한 대, 택시 한 대가 고작이지만 걸음 놓은 발자국이 사라질까 차마 발을 뗄 수 없는 곳. 이 섬에서 지금, 하루만 더 쉬어가자.

/글 사진 김형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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