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발생한 섬진강 홍수로 전북 지역에선 임실, 순창, 남원이 큰 수해 피해를 입은 가운데 11일 순창군 적성면 내월리의 한 딸기육묘장에서 농장주 이성연(51)씨가 수해로 난장판이 된 육묘장을 허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박상후기자·wdrgr@

“미나리 밭으로 가는 길은 아직까지 물속에 잠겨있고, 기계들도 침수 피해를 입어 작동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막막하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힘을 내봐야죠”.

11일 오전 찾은 순창군 풍산면 한 미나리농장. 본래 길이 위치했던 건물 뒤편으로 아직까지 빠지지 않은 흙탕물이 가득 차 있었다. 물을 빼내는 작업이 진행되는 방향에서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건물 앞쪽으로는 이번 비에 내용물이 섞여 내려가 텅 빈 장독대와 흙탕물을 뒤집어 쓴 갖가지 집기들이 널려있었고, 본래 체험장으로 사용되던 옆 건물은 텅 비어있는 채였다. 미나리를 가공해 판매하던 건물 안에선 쾨쾨한 냄새가 맴돌았다. 가득 찬 물이 건물 위쪽까지 뒤덮었던 흔적은 벽면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침수 피해를 입은 기계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으나 이제 쓸 수 없게 됐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장 관계자들은 도움을 받아가며 여전히 분주하게 몸을 놀렸다. 추석에 내놓아야 할 물량과 앞으로 있을 체험 일정에 맞춰 농장을 회복시키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농장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이날 만난 김기열(53) 씨는 “기계도 이제 다 못 쓴다고 하고, 처음 물이 빠진 직후 돌아와 건물 문을 열었을 때 못 쓰게 된 포장재 따위가 이리저리 널려있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막막할 데가 없었다”고 했다.

정성들여 키운 미나리도 휩쓸려 갔고, 포장기계도 못쓰게 됐지만, 그는 다시 힘을 내고 있었다.

그는 “그래도 군부대와 현장에 나온 공무원 20여 명이 청소도 도와주고 해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었다”며 “혼자였다면 그냥 주저앉아버렸을 지도 모르겠지만, 주변 도움을 받으니 다시 일할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옆에서 복구에 여념이 없던 아내인 전명란(48) 씨도 “사실 지금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바로 옆 제방이 1km에 걸쳐 4군데 가량 손상돼 있어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며 “그래도 건물이 남아있고,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계셔 한 번 더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이날 오후 2시께 찾은 순창군 적성면 한 딸기 육묘장. 내부 온도를 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탓에 안쪽 온도는 36도를 넘어섰고, 온실 설비를 조정하기 위해 설치된 배전반 등도 전부 물에 잠겨 흙투성이가 된 채였다. 한바탕 물을 뒤집어 써 살릴 수 없게 된 딸기 모종 등이 이번 물에 함께 들어온 흙탕물과 함께 바닥에 고여 있었다. 온실 설비는 고압 전류를 써 누전 등의 우려가 있어 켤 엄두조차 낼 수 없다고 농장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리고 아직 살아남은 딸기 모종을 살리는 일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농장 한 쪽에 남은 모종들을 가리켰다.

농장주 이성연(51) 씨는 “여기서 오래 농사를 지어왔지만 이렇게 비가 넘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옆에 붙어있는 집안 집기들도 죄 쓸려 내려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다보니, 솔직히 허탈하고 병충해 우려 등으로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피해 당시를 설명했다.

그는 “그래도 도움의 손길이 있어 자포자기 하는 일 없이 조금이라도 희망을 찾아 저 녀석들(딸기 모종)이라도 살려보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바닥에 깔린 흙탕물을 처리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같은 날 오전 11시께 찾은 전주시 완산구 서완산동의 한 주택에서도 침수피해를 극복하기 위한 손길들은 바삐 움직였다. 하루 빨리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6년째 서완산동에 거주 중인 김연옥(56)씨의 집은 지난 7일 폭우가 쏟아지면서 밀려온 토사를 뒤집어썼다. 실제 지난 7일 전주시에 쏟아진 강수량은 115.1mm에 달했다.

이날 찾은 김연옥씨의 집 마당엔 토사를 뒤집어썼던 가재도구들이 씻겨 있었고 거실과 주방 곳곳에 묻은 토사 흔적들도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에 하나 둘 닦여지고 있었다.

김연옥씨(56)는 “지난 금요일 쏟아진 폭우에 집 안 가득 토사로 막막했지만, 전주시 자원봉사센터에서 2차에 걸친 복구지원으로 정신적·육체적으로 조금씩 회복해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김수현 기자·ryud2034@ 장수인 수습기자·soooin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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