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무심하시지…. 또다시 저 제방 무너지면 안되는데, 조마조마합니다”.
지난 주말 집중호우 등으로 무너진 섬진강 제방 인근 마을에 대한 복구는 손도 못 대는 상황이어서 주민들은 막막하기만 하다.
간신히 복구 작업에 매달리고 있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다시 한 번 비가 내리면서 주민들은 또 강이 넘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10일 정오께 찾은 남원시 금지면 주민센터 옆 문화누리센터.
작은 건물은 지난 8일 내린 집중호우로 섬진강 제방이 무너지면서 물에 잠긴 남원시 금자면 일대 주민 약 200여 명이 머무르고 있었다. 본래 300여 명이 있었지만 일부는 집으로 돌아가고, 물이 늦게 빠진 일부 지역 주민들이 남아 발을 구르고 있었다.

이재민 대피소라고 해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멀리 할 수는 없는 까닭에 면사무소는 한창 텐트 간 간격을 두는 작업과 열감지장치 설치 등으로 분주한 분위기였다.
12년째 남원시 금지면 하도마을에 거주 중이던 A씨(57)도 수해를 입고 지난 8일에 문화누리센터에 온 사람 중 하나다. 점심 배식을 받아와 음식을 떠먹는 얼굴에는 수해로 인한 근심이 가득했다.

A씨는 “염소 40마리를 키우는데 다 떠밀려가 겨우 한 마리 남았다”며 “집이 물에 완전히 잠겨 당장 어떻게 복구할지 막막하다”고 울먹였다.
그는 이어 “제방이 무너져 마을로 물이 들어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대피소로 왔다”며 “뜬 눈으로 이틀 밤을 샜다”고 토로했다.
대규모 축사를 운영했던 농가의 피해도 심각했다. 이날 만난 B씨는 “오늘 오전 확인해보니 백여 마리에 이르렀던 소가 반도 안 되게 줄어버렸다”며 “축사를 보니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하도마을에서 25년째 감자 농사를 짓고 있다는 B씨(65)도 “감자 하우스 8곳이 무너졌다”며 “다음 달엔 감자 모종을 심을 계획이었는데 물난리에 눈앞이 깜깜하다”고 말했다.

남원시 금자면 마을 곳곳에는 채 다 치우지 못한 수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누군가 내놓거나 떠밀려 나온 듯한 가재도구들이 담장 옆에 쌓여있는가 하면, 길목에 잔뜩 들어차 통행을 가로막기도 했다. 다시금 내리기 시작한 비로 흠뻑 젖은 사람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집안의 물건을 치우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힘에 부치는 모습이었다. 이따금 잠시 멈춰 하늘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원망이 내비치기도 했다.

무너진 제방 인근 귀석마을에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앞장서 방문객을 맞았다. 1층이 모두 잠겨 꾀죄죄한 몰골을 한 주택들 사이로 흙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물건들을 주워 날랐다. 수확해 쌓아뒀던 양파들이며 쌀가마니, 깨 따위가 흙탕물을 뒤집어 쓴 채 악취를 풍기며 담벼락에 쌓여있었다.

잠시 그친 비로 자신의 집을 찾은 주민들은 문이며 창문이 다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린 집을 보며 “여기서 이제 어떻게 사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오전 11시께부터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비 탓에 인근 섬진강 제방 복구 현장을 보는 주민들의 입에서는 한숨이 떨어지지 않았다.
본인의 자택에서 한참 복구 작업에 매진하던 김재문(73)씨는 “자녀들이며 지인들에게 나눠주려 열심히 기른 양파들이며, 농작물들이 보일러 기름과 가축 분뇨로 뒤섞여 못 쓰게 되어버렸다”며 “수확은 고사하고, 복구 작업이 마무리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복구를 도우러 온 자녀도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중 비가 온다는 소식에 급하게 퇴원해 내려온 날 물이 넘쳐 부랴부랴 대피했다”며 “집안을 살펴보니 쓸만한 건 하나도 안 남았고,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으셨다”며 대피 전후의 상황을 전했다.

그는 또 “방역도 하나도 안 되고, 물이며 전기조차 언제 복구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만 들은 상황이다. 실질적 도움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역시 인근에 거주 중인 김현순(64)씨는 “고추밭이고 고구마밭이고 전부 물에 잠기고 못 쓰게 돼 올 농사는 정말로 어렵게 됐다”며 “1층에 있었던 것들은 다 버리게 생겼고, 그나마 건물도 벽이며 구들장에 다 금이 가 위험해 살 수 없을 판국”이라고 하소연 했다.

복구에 지원 나 온 남원시도 난감한 상황이다. 복구지원에 나온 인력들도 재차 내리는 비에 전원 철수한 상태인 데다 전기도 합선과 화재 등 우려가 있어 당장 복구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편, 현재까지 남원시에 발생한 이재민 수는 1000여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김수현기자·ryud2034@ 장수인수습기자·soooin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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